울음마저도 죄가 되던 암흑의 시대 저편으로
봄볕이 따사롭게 길을 비추고 있다. 허나 제주의 봄바람은 손끝이 아리도록 가슴에 파고든다. 슬픔에 젖은 꽃망울이 터트리지도 못한 채 울고 있기 때문일까.
꽃향내를 품고 피어나고 싶었지요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할아버지와 할머니처럼 어머니와 아버지처럼
제주의 아들· 딸로 소박하게 살고 싶었지요
그날, 피비린내로 얼룩진
광기 서린 공포에 휩싸이면서
저승도 이승도 아닌 길에 서 있더군요
나의 봄은 어디서 만날 수 있을런지요.
서우봉 정상 북쪽에서 바라보는 조천읍 북촌리 풍광은 넉넉하고 그저 평화롭기 그지없다. 쪽빛 바다에 떠있는 아름다운 섬 ‘다려도’와 갯마을이 어우러지는 북촌리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그 아름다운 너머에는 근현대사의 슬픔이 하얀 파도처럼 일렁거리고 있다. 북촌리는 서우봉을 경계로 함덕리와 인접해 있고 동쪽으로는 구좌읍 동복리가 근접해 있다. 예전에는 '뒷게'라 불렸다. 이후 조선말까지 한자음을 빌려 북포(北浦)라 불렀으며, 현재는 ‘북촌리’로 명명됐다. 북촌리에는 631여 세대에 1,656여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한때 이 마을은 ‘무남촌’으로 알려져 왔다.
서우봉 기슭에 자리 잡은 '너븐숭이 4.3기념관'에서 북촌리에서 행해진 4.3의 비극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북촌을 모티브로 한 현기영 작가가 소설 '순이삼촌'을 발표하면서 4.3의 진실은 금기의 벽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곳에는 ‘4.3위령비’, ‘순이삼촌비’와 ‘애기무덤’과 ‘방사탑’이 들어서 있다. 4.3기념관에 근무하고 있는 김창화(66) 4.3해설사는 "1949년 1월 17일 북촌에서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 자행됐다"면서 "비극적인 '북촌사건'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촌사건은 북촌국민학교를 중심으로 한 동·서쪽들과 밭에서 자행됐는데 이날 북촌에 있었던 남녀노소 300명 이상이 한날한시에 희생됐다"며 4.3의 참혹한 현장에 대해 말했다. 이 때문에 이 마을에선 매년 음력 섣달 열여드렛날이면 4.3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집단적인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어 김 해설사는 “두 살배기도 안 되는 어린아이까지도 학살됐다”면서 “좌·우파를 따지기 전에 윤리적 차원에서 잘못된 일”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아직도 4.3에 대한 응어리는 풀리지 않는 상태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 너븐숭이는 4.3대학살로 인명 희생이 많았던 곳”이라며 “아이들의 돌무덤 몇 기가 당시 매장한 상태로 남아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 마을 토박이인 김호택(50) 이장은 북촌의 4.3유적지로 낸시빌레와 너븐숭이, 당팟, 등명대, 포제단, 포구, 북촌성터 등이 있다며 마을을 소개했다. 김 이장 역시 4.3 유족이다. 당시 김 이장 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하러 갔다가 군인들에 의해 총을 맞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서우봉 기슭에는 19기의 진지가 있다”면서 “진지동굴과 4.3기념관을 연계한 학습장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 이장은 “북촌리는 신석기시대의 바위그늘 유적지인 '고두기엉덕'이 있는 유서깊은 마을"이라고 자부했다. '고두기엉덕'은 제주도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동굴을 그대로 이용한 집자리 유적이다.
이어 김 이장은 "'등명대'를 비롯해 '본향 기랏당'과 '당팟당', 환해장성' 등은 마을의 문화와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등명대'는 북촌 포구 옆 해녀 휴게소 오른쪽 뒤편에 있는 제주의 전통 등대이다. 이 등명대는 연도를 확인할 수 있는 1915년에 세워졌다는 표지석이 있다. 이 표지석에는 4.3 당시 군인들이 쏜 총알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등명대’ 옆에는 마을 주민의 정신적 안식처인 '본향 기랏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 당은 지역 주민이 모여 굿을 하는 곳이다. 이 마을에선 음력 1월 14일 신년제인 '신과세제'를 올린다. 또한, 2월 13일에는 풍어를 기원하는 '영등굿'과 7월 14일엔 가축의 번성을 기원하는 '백중제'를 올리고 있다. 특히 ‘본향 기랏당’을 벗어나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면 눈길을 끄는 4그루의 퐁낭(팽나무)이 있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앙상한 가지를 뻗어 있는 4그루의 팽나무의 모습이 을씨년스럽다. 이 팽나무 주변에는 제주 민속신앙인 ‘당팟당’이 있다. 이 당은 지역명인 ‘당팟’을 딴 이름이다. 이곳 당팟은 북촌대학살의 1차 집단학살지이다. 1949년 1월 17일 군인들은 북촌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인 주민을 이곳으로 끌고 와서 총살했다. 4.3당시 인명 희생이 가장 많았던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곳 팽나무는 4.3의 넋을 위로하듯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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