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마을탐방

마을공동체의 성소 '와흘 본향당'

제주영주 2013. 2. 26. 20:21

                

 

본향당 제단 주변 나무에 매달아 놓은 하얀 소지가 펄럭인다. 무명실과 백색의 한지인 소지를 가슴에 대고 소원을 빈 뒤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풍경이 이방인의 시선을 끈다.

 

 

제주의 문화와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와흘 본향당’이 2월 23일 열렸다. 이 본향당은 제주시에서 동남쪽으로 11km 지점에 있는 조천읍 와흘리 입구에 있다. 와흘 본향당은 수령이 400여 년이 훨씬 넘은 커다란 신목 아래 제단이 있다. 제단은 좌우로 긴 3단 계단 형태이다. 제단 위에는 '백조십일도령 본향 신위'라고 새긴 돌 위패가 있다. 특히 이 본향당은 돌담으로 둥그렇게 울타리가 쳐져 있는데 규모가 제법 크다.

 

 

이날 와흘 주민은 물론 이곳에 뿌리를 둔 사람들은 제물 구덕(바구니)을 지고 와흘 본향당을 찾아와 정성껏 마련한 제물을 제단에 올리며 마을과 가정에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큰 제를 지낸다. 또한, 무명실에다 백색의 한지인 소지를 묶고 나뭇가지에 매달며 소원을 빈다.
 
 1만 8000 신(神)이 사는 제주에는 마을마다 신(神)을 모시는 신당(神堂)이다. 이를 본향당(本鄕堂)이라고 한다. 이러한 신당(神堂)은 지역공동체의 성소로서 제주사람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담당해 왔다. 와흘 본향당은 지역 주민의 출생과 사망, 재물 등을 관장한다. ‘와흘한거리 하로산당’ 또는 ‘노늘당’이라고도 한다. 당신은 ‘송당 소로소천국 열한 번째 아들 산신또’로 사냥을 하는 산신이기 때문에 당굿을 할 때 산신놀이를 한다. 처신은 ‘서울 서정승 따님 애기’로 제단은 본향당 내 동쪽에 따로 마련해 모셨다.


 

이 마을 본향당 제는 과거 제주 마을제의 모습이 그대로 잘 남아 있으며 2005년에 민속자료 제9-3호로 지정돼 있다. 이 마을에선 일 년에 두 번 제를 지내는데 매년 음력으로 1월 14일에는 '신과세제'를 7월 14일은 '백중제'를 연다. '신과세제'는 마을 전체의 무사안녕과 생업의 풍요를 기원하는 행사이다. 와흘리 천창석(50) 이장은 "당의 제일에는 지역주민은 물론 타지에 나가 있는 사람들까지 본향당을 찾아와 치성을 올리며 무사안녕을 빈다."고 말했다.


 

특히 '와흘 본향당 신과세제'는 2013 작은 공동체 전통예술잔치 사업에서 우수축제 마을로 선정됐다. 이와 관련해 천 이장은 "마을 공동체 발전을 위해 와흘 본향당 보존관리와 전통 민속 문화를 보전하는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또한 천 이장은 “조천읍 신촌리 올레길과 연계해 와흘 본향당 탐방을 할 수 있는 올레길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마을은 2004년 정보화마을로 지정됐다. 마을에서 생산되는 타이벡감귤과 고사리, 메일, 녹차가루 등을 판매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 마을에선 체험관광을 개발해 녹차.불루벨리체험을 비롯해 메밀칼국수 만들기와 와흘마을 탐방 등의 프로그램을 개발해 시행하고 있다. 프로그램 참여는 와흘리 홈페이지(http://waheul.invil.org)를 통해 접수하면 된다.


 '제주와흘메밀마을' 이정표가 나 있는 마을 안길로 들어서면 돌담으로 이어지는 길이 소박하니 정겹다. 특히 이 마을은 집마다 새마을기가 게양돼 있다. 이와 관련해 천 이장은 "와흘리는 살기 좋은 마을로 선정돼 새마을 견학마을로 호평을 받고 있다"고 자부했다. 와흘 운동장 앞에는 정갈하게 꾸며진 연못이 있다. 지역 주민의 빨래터와 우마로 사용됐던 이 연못은 자연학습장으로 활용되면서 와흘리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연못 중앙으로 난 아치형 돌다리가 운치를 더해준다.


 

한라산의 정기를 받은 산세가 편안하게 누운 사람의 모습을 형상하고 있다 하여 ‘와흘리’라 부르는 이 지역도 4·3사건의 상처가 뼛속까지 시퍼렇게 멍이 든 마을이다. 천 이장은 "400여 년 전 설촌된 와흘리는 4·3사건 당시 지역주민이 무참하게 살해당해 희생자가 많았다"고 한다.

 

4·3사건 희생자를 위로하기 위해 와흘리 운동장 입구에 '4.3사건 희생자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이 마을은 4·3사건으로 사라졌다가 1954년에 재건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와흘리 본동을 중심으로 상동, 고평동, 초록동, 전원마을로 지역 주민은 감귤과 축산, 농업 등에 종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