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품은 ‘화북동’
발길 닿는 곳마다 역사와 문화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마을, 그 곳에선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자연경관이 한데 어우러져 발길을 이끌게 한다.
제주시 별도봉 서쪽 기슭으로 펼쳐지는 화북동으로 향했다. 화북의 옛 이름은 ‘별도’이다. 이 마을은 화북1·2동과 6개의 자연마을, 5개 대단위 아파트단지와 화북공업단지로 형성됐다. 서쪽으로 별도봉과 동쪽으로는 원당봉이 포근히 감싸않은 형국이다.
김창기(58) 화북동주민자치위원장은 “화북동은 제주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높은 유적지가 많은 고장”이라고 자부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화북문화유적탐방 코스를 소개했다. 이 코스는 제주의 개국신화와도 관련이 깊은 ‘삼사석’을 기점으로 별도연대, 별도환해장성, 해신사. 화북진성, 김씨와가, 곤을환해장성, 잃어버린마을 곤을동, 별도봉, 화북비석거리, 거로능동산방묘까지 연결돼 있다. 이처럼 화북동은 유적이 제법 많이 남아 있는 지역이다.
‘삼사석비’는 화북주공아파트 건너편에 세워져 있다. ‘삼사석’은 탐라의 고.양.부 삼신인이 벽랑국 세 공주를 배필로 정한 후 터전을 정하기 위해 화살을 쏘았는데 그 화살이 날아와 꽂힌 돌멩이를 보관한 것이다. 삼사석비를 지나 꼬불꼬불 휘어지는 화북 마을 안길이 정겹다. 시원스레 뻥 뚫린 길이 아닌 미로 같은 길이 돌담으로 이어진다.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봄볕을 맞으며 천천히 걷다보면 복원된 별도연대와 별도환해장성을 만날 수 있다. 연대는 적의 침입과 위급함을 알렸던 통신망이었다. 환해장성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해안선을 따라 쌓은 성이다. 화북마을을 보호하듯 돌담으로 둘러친 환해장성을 빠져나오면 ‘화북진성’과 해신사가 맞이한다. 해신사는 제주로 부임한 목사가 직접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며 제를 지냈던 곳이다. 이 마을에선 매년 음력 1월 5일 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해신사’ 옆에는 몇 척의 작은 배와 보트가 정박해 있는 화북포구가 있다. 김 위원장은 “화북 포구는 옛 제주 해상교통의 관문으로 출입포구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라고 소개했다. 화북포구를 에워싸고 있는 ‘시가 있는 등대길’이 이색적이다.
이 등대길에는 수많은 시가 방파제 벽면을 따라 즐비하게 새겨져 있다. 탁트인 바다와 등대, 그리고 포구는 화폭의 그림이다. 완연한 봄볕이 스며든 포구에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부심이 잔잔히 내려 앉아 반짝인다.
별도봉으로 향해는 화북해안도로를 가다보면 지방 관리들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석거리를 만나게 된다. 즐비하게 늘어선 비석거리를 지나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으로 향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화북공업단지를 이설하려 해도 대체부지가 없다보니 어려운 실정”이라고 했다. 상업지구 문제 관련해 그는 “토지 매입 절충이 원활하지 않아 난항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는 “화북공업단지와 상업지구가 하나로 묶어지면 동서로 아우르는 중심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별도봉은 사봉낙조로 유명한 사라봉과 쌍둥이처럼 이웃해 있는 오름이다. 별도봉 기슭으로 기암괴석과 절벽이 바다와 조화를 이루는 풍광이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 너머에는 4.3의 아픈 흔적이 남아 있다. 별도봉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파도소리를 듣다보면 발아래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이 펼쳐진다. 이 마을은 4·3 당시 초토화되어 주인 없는 집터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그 쓸쓸함은 파도소리와 함께 귀전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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