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자연 속에서 더부살이하는 우리들 | |
오름기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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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오름
거미오름은 선흘리에 있는 서검은오름과 구분하여 동검은오름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사방으로 뻗어나간 모습이 거미집과 비슷하다 하여 거미오름이라 부르는 이 오름은 거대한 거미가 기세등등한 자세로 오름 자락을 움켜잡고 있는 형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름은 부드러운 원형으로 둥글둥글 누워 있기도 하지만, 거미오름은 독특한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다. 모양새가 특이하게 생긴 이 오름은 피라미드형 봉우리가 매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 높은 주봉에 올라서면 가을 하늘로 가는 계단이 내려 올듯합니다. 오름에서는 바람이 그치지 않습니다. 바람은 풀섶 위로 눕기도 하고 오름 자락을 어루만지다 일렁이는 파도처럼 오름을 휩쓸고 다니기도 합니다. 자줏빛 탐라황기, 노랑개자리 꽃이 높은오름을 바라보면서 하늘하늘 자그마한 꽃잎으로 한여름의 추억을 가을 첫 향기에 살며시 내려놓습니다. 여름꽃이 지는 자리마다 오름에도 가을향연으로 가득 채워 지겠지요. ▲무릇
야트막한 문석이오름을 향해 피어난 무릇이 발길을 붙잡습니다. 보랏빛 무릇이 나 좀 찍어 달라고 포즈를 취하고 있지만, 바람은 끊임없이 불어옵니다. 포도송이처럼 알알이 달린 꽃봉오리가 톡 톡 터지면서 보랏빛별처럼 피어나는 무릇꽃에 반해 바람이 잠시 쉬기를 기다렸지만, 갈바람은 부드럽게 살랑살랑 춤 추며 가을 향기를 실어 오느라 분주하기만 합니다. 보랏빛 무릇꽃 곁에 흰무릇꽃이 함초롬하게 피었지만, 총총 피어나는 하얀 별의 넋을 앗아갈까 봐, 바람은 흰무릇꽃을 가만히 놓아주지 않습니다. 바람과 사투를 벌이느라 꽃 앞에 가만히 앉아 있는 나를 본, 소 떼들이 풀을 뜯고 있다가 내 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소들마저 하얀 별의 넋을 내게 빼앗길 봐 걱정이 되는 모양입니다. 흰무릇을 예쁘게 담는 것을 포기하고는 하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어디선가 흰무릇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갈바람을 가르며 거미오름을 하산하여 문석이오름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문석이오름
문석이오름은 친구를 부르듯이 친근감이 가는 오름입니다. 문석이오름의 매력은 바람에 일렁이는 풀섶이 마치 초록바다를 연상케 합니다. 바람에 풀섶이 눕기도 하고 일어서기도 합니다. 풀잎을 뜯어 풀피리도 불어봅니다. 막내딸 은혜는 초록 물결로 일렁이는 문석이오름의 매력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엄마, 마치 바다 같아요." 오름에 있는 바다는 짜디 짠 갯내음이 아닌 풀내음으로 출렁거립니다. 초록 물결로 출렁거리는 풀섶을 헤치고 헤엄을 치듯 지나갑니다. '한라산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님 모두가 갈바람에 가을 향기를 맡으며 가을을 향해 오르고 있습니다. ▲출렁출렁 초록 물결이 일렁이는 문석이오름
정상에 서면 야트막한 문석이오름 주변으로 크고작은 오름이 다가와 앉습니다. "문석아"하고 부르면 문석이오름은 어느새 풀향기로 다가와 한여름의 피로에 쌓였던 영혼을 닦아 내려줄 듯 아늑함으로 펼쳐집니다. 살랑살랑 일렁이는 풀숲에 서서 양팔을 벌리고 초록 물결 속으로 가을바람을 가득 안아봅니다. 출렁이는 풀숲으로 잔잔한 가을 소리가 들려옵니다. ▲야고
억새풀 사이로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야고와 눈인사를 나누며 천천히 억새풀을 스치며 가을을 맛봅니다. 급하게 지나가는 이들은 야고의 음성조차 듣지 못할 것입니다. 야고의 꽃받침 모양은 담뱃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연한 자줏빛 꽃은 옆을 향해 피어납니다. 살며시 꽃잎 안으로 들여다 보면 공처럼 생긴 동그란 알이 박혀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여의주라도 물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자연에 의존하면서 살아갑니다. 야고만이 더부살이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역시 위대한 자연 속에서 더부살이하고 있음을 야고가 살며시 일깨워 줍니다. 위대한 자연에 감사하며 자연으로 돌아가는 연습을 하면서 우리는 생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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