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겨울을 찾아서 한라산으로 가다

제주영주 2007. 1. 29. 13:25

 

 

 

 

 

 

 

 

 

 

 

 

 

 

 

 

 

 

 

 

 

 

 

 

 

 

 

 

겨울을 찾아서
한라산에는 눈새가 있습니다.
 

올겨울은 겨울답지 않다. 겨울이 어디론가 자취를 감춰버린 듯 겨울 속의 봄을 맞이해야 한다. 그런 덕분에 복수초도 어느 해보다 일찍 피어 반긴다. 하지만, 겨울의 흑과 백의 진미(眞美)를 제대로 느낄 수 없다. 겨울은 가을과 봄 사이에 숨어 버렸는지 자취를 감췄다. 사라져 버린 겨울을 찾아서 떠나고 싶은 마음에 밤새 도둑눈이 내렸으면 했다.
설의(雪衣)로 갈아입은 한라산이 그리웠다. 며칠 궂은 날씨가 연일 되더니, 한라산은 마치 나니아 연대기에서 장롱문을 열면, 온 세상은 흰색만이 존재하는 백의 세상처럼 마법에 걸렸다. 색다른 겨울 한라산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문 밖을 나선다.
아침 일찍 출발할 수 없는 관계로 어리목 코스로 윗세오름까지 가기로 했다. 눈썰매를 타거나 설경을 보기 위해 어리목광장까지는 다녔으나 어리목 코스로 겨울 등반은 처음이다. 새하얀 눈을 밟는다. 함박눈이 모자에도 눈썹에도 소리 없이 내려앉는다. 시나브로 마법에 걸린 산. 마법에 걸린 숲길을 오른다. 사제비동산까지는 힘든 오르막이지만, 끝없이 펼쳐질 설원을 생각하면 힘든 것은 참을 수 있다.
헉헉거리는 숨을 몰아쉬고는 하늘 가득 메우는 눈꽃을 바라보노라면, 어느새 거친 호흡 속에서 새하얀 눈꽃이 피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아, 그래서 겨울 한라산이 그리웠나 보다. 내 마음에도 눈꽃이 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더욱 겨울 한라산이 그리웠나 보다.
어느새 사제비동산까지 올랐다. 하늘빛은 어디로 감춰 버렸는지 온통 새하얀 세상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등산객을 위해서 펄럭이는 빨간 깃발만을 바라보며 걷는다. 빨간 깃발을 따라 걷다 보니 초라하지만, 마법의 성이 보인다. 그 성안에는 배고픔을 달래줄 컵라면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마법의 성까지 가는 길은 평온의 길이다. 손이 꽁꽁 얼어붙지만, 행복의 길이며, 꿈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겨울을 축복하는 트리가 멋들어지게 펼쳐지기도 하고, 눈새를 만날 수 있는 행복의 길이기도 하다.
끝없이 펼쳐지는 설원에는 눈보라 속에서 만들어낸 눈새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겨울 한라산에는 자그마한 눈새부터 커다란 눈새가 있다. 그들은 슬프게도 날지 못하는 날개를 매일같이 꿈으로 키워가고 있다. 눈이 녹아내리면 그들의 꿈은 눈물처럼 흘러내리겠지. 그들은 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일 같이 꿈을 날개에 싣고 키워가고 있다. 나뭇가지에도 빨간 깃발에도 눈새가 날아와 꿈을 키워가고 있다. 존재하는 사물마다 눈새가 날아와 앉아 등산객을 위해서 꿈을 실어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들의 은빛 날개를 만져 봤을까?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부서져 내리는 은빛 날개, 그러나 그들은 실망하지 않는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있으니까. 눈새는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를 부를 수도 날 수도 없지만, 눈새를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아름다운 노래보다 더욱 강한 용기와 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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