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가을 따라비

제주영주 2006. 3. 9. 14:36

 

꽃물결로 출렁거리는 가을
[꽃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 은빛물결 속으로 따라비를 향해가다.




 ▲ 은빛 지느러미 속으로 유영(游泳)을 하듯 출렁거리는 따라비

가을이면 한층 은은하게 불어오는 갈바람 속으로 은빛 지느러미들이 파닥이는 들판으로 뛰어들고 싶어집니다.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하얀 손을 흔들며 환영하는 은빛 물결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은빛 지느러미가 돋았는지 출렁이는 오름능선 따라 유영(游泳)하듯 은은한 가을 속으로 젖어듭니다. 은빛 지느러미 속으로 유영(游泳)을 하며 가을 속으로 젖어들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제주만이 가진 특색이 아닐까요.
은빛으로 물들어가는 가을 들녘을 누비며 아름다운 곡선미를 자랑하듯 멋들어지게 가을볕에 누워있는 따라비를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 가면 은빛물결 속으로 가을들꽃 축제가 한창이겠지요. 은빛가을 속에서 가을을 만나고 싶으시다면, 이 가을에 아름다운 오름과 들꽃의 향연을 찾아서 은빛물결 출렁이는 들녘으로 떠나보세요.
흙먼지 뿌옇게 휘날리는 오솔길을 지나면 틀림없이 은빛 들녘이 펼쳐지게 됩니다.
늘 가을이면 따라비를 찾아갔습니다. 아름다운 따라비를 향해 가는 마음은 풍선처럼 하늘 높이 날아만 갑니다. 마른 풀잎 내음 풍겨오는 오솔길 따라 보일 듯 말듯 아름다운 따라비 능선이 은빛물결 사이로 출렁거리기 시작합니다.
그 누가 알몸으로 들판에 누워서 뒹굴 수 있겠습니까. 물결을 일렁이는 파도처럼 출렁거립니다. 당당하게 파란 하늘 아래 알몸으로 뒹굴 수 있겠습니까? 오로지 아름다운 곡선미를 가진 오름만이 특권입니다. 알몸으로 누워 있어도 한 점 부끄럼 없이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숨김없이 맑고 깨끗하다는 것이겠지요. 어느 누가 자연처럼 당당할 수 있겠습니까.
파도치는 은빛물결을 지나 출렁거리는 따라비에 올랐습니다. 저만치서 물결을 출렁거리며 다가오는 오름군들이 빙 둘러 있고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들꽃들이 가을볕에 반짝이기 시작하면서 오름에는 가을축제가 막 시작됐습니다. 한라산의 들꽃들이 한발 한발 내려오더니 오름마다 보랏빛으로 곱게 물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기다림으로 그리움으로 시간을 보낸 날들입니다. 오름으로 가을 들꽃을 만나기 위해 찾아갔으나 산그림자처럼 쓸쓸한 채 휑하니 부는 갈바람만이 가득 담고 돌아서야 했던 날들을 보상하듯 드디어 오름마다 보랏빛 향연으로 가을 들꽃 축제가 시작됐습니다.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자주쓴풀이 꽃송이 한 아름씩 안고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어찌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한라산정상 부근에서 만났던 도도한 네귀쓴풀보다 습지에서 만났던 개쓴풀보다 한결 정이 가는 자주쓴풀꽃이 보내오는 보랏빛 미소에 황홀하기만 합니다. 연보랏빛 꽃잎에 줄무늬가 짙게 새겨진 화려한 자주쓴풀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을 때 저만치서 목을 길게 빼고 하얀 얼굴을 내미는 물매화가 손짓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라산의 들꽃들이 지고 나서야 오름에는 이제야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투명한 가을 하늘 아래 섬잔대꽃이 땡그랑거리는 종소리에 가을축제를 위해 구름처럼 오름마다 뭉게뭉게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꽃향유의 매력은 군락을 이루며 민틋한 오름마다 물들일 때가 장관입니다. 꽃향유 꽃잎을 살펴보니 앙증맞은 곤충 같습니다. 솜털이 수북이 난 아기곤충이라고 할까요. 4개인 수술 중 짧은 수술 2개는 더듬이 같고 나머지 수술 두 개는 길게 나 있는 것이 마치 발처럼 보입니다. 귀여운 아기곤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한라부추의 바통을 이어받고 내려온 자줏빛 산부추가 갈바람을 타며 춤결을 이루기 시작했고, 보랏빛 물결 사이로 미역취가 환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가을볕이 잔잔히 부서져 꽃잎 위로 사뿐히 내려와 꽃물결로 출렁거리는 가을, 오름마다 가을향연으로 곱게 물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 자주쓴풀꽃이 보내오는 보랏빛 미소에 황홀하기만 합니다.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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