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릇파릇한 봄바람이 일렁이기 시작하면서 청보리 물결로 일렁이는 섬, 가파도. 그 섬에 가고 싶었습니다.
가파도행은 하루 두 차례만 운항을 하기 때문에 가파도에 가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원형의 접시를 닮은 섬이 바다 위에 나지막하게 떠 있습니다. 그 섬에 가면 바다보다 푸르게 넘실거립니다. 그동안에 가고 싶었던 가파도, 드디어! 모슬포항에서 도선항에 몸을 실었습니다.
모슬포와 마라도 중간 지점에 있는 섬으로 마라도 2배 정도 되는 섬입니다.
가파도에 도착할 무렵 상동포구가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싣고 가는 배는 선착하지 않습니다.
섬 둘레를 유람 시켜주는가 했더니 상동포구 반대쪽에 있는 가파포구에 도착하니 우리를 싣고 가던 배가 선착합니다.
모슬포항에서 아침 8시 30분에 출항하여 가파포구에 도착하면 9시가 됩니다.
다음 배는 가파포구에서 오후 2시 30분에 출항합니다.
우도나 마라도처럼 자전거를 대여하는 곳이 없기 때문에 모처럼 느긋하게 가파도 기행을 할 수 있는 좋은 점도 있습니다.
상동포구와 가파포구 주변으로 옹기종기 바다로 나와 있는 집들은 마치 섬을 찾는 이방이라도 반기는듯합니다.
섬이란 이름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때묻지 않는 순수함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때묻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에 동경이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또는 보이지 않는 외로움으로 몸부림치고 있기 때문에 외지인들에게 사뭇 동경이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가파도는 마라도나 우도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섬입니다.
그런 탓인지 관광객들로 붐비지도 않을뿐더러, 그저 자연 그대로 살아가는 가파도 주민들과 끝없이 펼쳐지는 보리밭 물결이 파도처럼 일렁이며, 가파도는 외로움에 몸부림치고 있을 뿐입니다.
가파도의 주 특산물 보리밭 물결을 보기 위해서 가파포구에서 서쪽 해안선을 따라갔습니다.
우리 일행은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청보리 물결 속으로 뛰어들 듯 시나브로 청보리 물결과 하나가 되어 숨어 버렸습니다.
보이는 것은 섬 전체가 온통 푸른 물결로 넘실거립니다. 그 짙푸른 물결 속에 고인돌 군락이 산재해 있습니다.
청보리밭 물결 속에 아름다운 갯무가 보입니다. 보리밭 한가운데 갯무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무덤이 있습니다. 가파도에는 무덤마다 갯무꽃이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가파도 사람들은 뼈를 흙에 묻고도 자식 사랑이 극진한가 봅니다.
무꽃은 꽃을 피우기 위해서 단단했던 뿌리가 골다공증에 걸린 뼈처럼 바람이 숭숭 들면서 꽃을 피웁니다.
뿌리의 양분을 먹은 꽃들은 생글생글 아름답게 빛나는 꽃이 됩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아낌없이 주는 무꽃의 아름다움처럼 가파도 사람들은 죽어서도 아름답습니다.
어느 곳이든 적절하게 아름다운 시기가 있는 법입니다.
가파도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4월 초입니다. 청보리 이삭이 바닷바람에 물결처럼 일렁이는 시기입니다.
보리밭은 어디서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파도의 보리밭은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보리밭과는 사뭇다릅니다. 섬전체가 청보리 물결로 멀미나도록 술렁거리기 때문입니다.
보리밭의 아름다움은 황금빛으로 물결치는 오월의 보리밭도 아름답지만, 청보리 물결로 생동감과 싱그러움으로 나부끼는 아름다움에 있습니다.
맑은 날의 청보리밭 물결은 상쾌함도 있지만, 자욱한 안개에 보일 듯 말듯 한 청보리 물결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서정적인 그림이 되고 시가 되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 섬에 가면 하늘 아래 온통 보리밭 물결로 멀미나도록 출렁입니다.
바다와 어우러지는 청보리밭 물결, 하늘 아래 오로지 청보리 물결로 출렁이는 드넓은 벌판, 가파도 보리밭 사잇길로 거닐면서 바다와 어우러지는 초록빛의 출렁임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가파도에서는 바람도 보리밭에 들어서면 한풀 꺾이는지 사알짝 스치고 갑니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는 가파도 바람,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보리밭 사잇길로 가볍게 스치고 갑니다.
가파도에서는 바람도 그림이 되는 섬입니다. 바람이 그려내는 보리밭 물결이야말로 자연 그대로 그려내는 아름다운 조화입니다. 막내딸 은혜가 파릇한 보리 잎을 뜯어서 보리피리를 불어봅니다.
몇 번 불더니 제대로 소리가 나지 않는 모양입니다. 바람 따라 일렁이는 보리 물결처럼 고운 음색은 아니지만, 보리피리 흉내를 내는 은혜의 풀잎 같은 순수함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4월입니다.
실바람 속에 출렁이는 보리 내음이 마음 한 자락에 와닿습니다. 그리움처럼 묻어나는 내음, 실바람에 끄집어내듯이 어릴 적 그리움이 살랑입니다.
보리 이삭이 누렇게 익어갈 즈음이면 일손이 바빴던 그 시절, 어머님의 흠뻑 젖은 땀 내음이 들풀처럼
살가웠습니다. 오뉴월의 황금 들판이 익어가는 보리내음처럼 포근합니다.
가파도의 청보리밭 물결 속으로 끝없이 거닐고 싶은 섬, 그러나 땀흘리며 일하시는 가파도 주민들의
노고에 누가 될까 봐 마냥 청보리밭 물결 속으로 거닐 수 없었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가파도포구에서 서쪽 해안도로를 따라가노라면 끊어지는 길에서 매끈매끈한 돌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는 자갈해안으로 내려가면 특이하게 구멍이 나 있는 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막내딸 은혜는 신기한 듯 자잘한 돌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큰이끈여와 작은이끈여 사이에는 방목시키는 염소도 만날 수 있으며, 오지의 길처럼 길이 없는 길을 걷다 보면 끊어졌던 해안선이 이어지면서 바다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기암괴석을 만날 수 있습니다. 거대한 기암괴석은 가파도 수호신처럼 바다를 향해 서 있습니다.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밭담이 아닌 이중 돌담벽을 만날 수 있는데, 이는 성담으로 외지인의 출입을 막으려고 세웠던 것이라고 합니다.매끈한 돌로 쌓은 성담은 바닷물에 금방 헹궈낸 듯 아름답습니다.
가파도에는 청보리 물결도 아름답지만, 돌담도 아름다운 그림이 되는 섬, 짙푸르게 멀미나도록 아름답습니다.
고인돌
가파도에 있는 무덤
외지인의 출입을 막으려고 세웠던 이중 돌담벽인 성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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