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년 첫 오름
높은오름
은비늘 빛 살랑살랑 누비던 가을이 훌쩍 지나간 흔적마다 쏴~한 바람만이 스쳐가는 소리 겨울임은 알려주는 갑신년 첫 오름을 오릅니다. 마른 풀섶들이 서걱거리며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능선 위로 손바닥만 한 겨울햇살이 비집고 내려오는 능선에 앉아서 숨을 고르며 올라왔던 뒤를 돌아봅니다.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은 마흔셋 이랑을 만들어 놓았지만, 그이랑 속에는 심어야 할 씨앗들이 아니, 초록빛 싹이 무럭무럭 자라야 할 싹이 보이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그 어둠 속에서 씨앗들이 빛 한번 받아보지도 못한 채 썩어 가는지도 모른 채 마흔셋의 이랑만을 일구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툭툭 털고 일어나 오늘이란 너에게 아니 내일이란 너에게 도전장을 내밀며 헉헉거리는 숨을 몰아쉬며 오늘도 오릅니다. 가끔은 모진 바람이 나의 뺨을 때려주기를 바라면서···.
높은 오름은 구좌읍 일대에서 제일 높은 오름으로 다랑쉬와 비슷합니다. 제일 힘들게 올랐던 다랑쉬오름에 비하면 쉽게 오를 수 있는 오름이면서, 동쪽 끝 언저리까지 내다볼 수 있는 오름입니다. 높은 오름에 올라서 보니 왜 높은 오름이라 불렀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한라산 자락으로 둥글둥글 연이어져 오는 오름 곡선들이 모여 사는 곳답게 한눈에 조망할 수 있습니다. 다랑쉬오름, 지미봉, 식산봉, 두산봉, 길게 누운 우도, 거대한 성 모양을 한 성산일출봉이 훤히 보이며 섭지코지, 수산봉, 용눈이오름, 손자봉, 거미오름, 백약이, 영주산, 아부오름, 이처럼 오름의 천국인 제주는 오름의 고향이며 억새의 고향 또한, 말들의 고향입니다.
이 아름다운 자연이 영원히 보존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004년 첫해를 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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