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우봉
철 지난 백사장에는 은빛 모래만을 어루만져주는 소리,
수많은 여름 인파가 떠난 자리를 메우는 소리,
들썩거리며 숨 고르는 물결소리가 잔잔히 들려온다
초록빛 물감 솔솔 풀어놓은 함덕해수욕장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것은
은빛 모래사장 위로 불어오는 겨울바람,
가슴속으로 꼭 껴안아주고 싶은 바람
바람의 살갗으로 쏙 들어간
겨울 한낮 절의 햇살 속으로
서우봉이 텅 빈 백사장을 거닐고 있다
---그 형치가 마치 물소가 바다에서 뭍으로 올라오는 듯한 까닭으로 물소 서(犀)자를 써서 ‘犀牛峰’이라 불렀다. 하여 '서우봉' 또는 '서모봉'이라 불립니다.
계단식으로 되어 있는 밭들이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사이로 구불구불한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가면 저 멀리 끝까지 보일 듯합니다. 구불구불 산길을 오르는 73세인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이곳의 유지인 할아버지는 “8남매를 키우느라 오로지 앞만 보고 인생을 살았는데 이제야 와서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이 허무이며, 이제 천국의 부름만을 기다리며 속죄를 씻고 다시 태어나면 그 누구인가 반겨줄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라시며,
살아서는 그렇게 부모님의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이 한이 되어 자신의 불효를 씻기 위해 할아버지의 부친의 묘가 있는 서우봉을 자주 오른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서우봉의 매력은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다 숨을 고르며, 잠시 뒤를 돌아 넓은 백사장을 어루만져주는 초록빛 바다 속으로 꿈처럼 낙하하고 싶은 바다가 펼쳐지는 데 있습니다.
오름 산상에는 누가 갖다 놓았는지 모를 의자 세 개가 놓여 있습니다. 고마운 의자에 앉아서 잠시 바다를 향해 바라보면 해안선을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어촌들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지고 저 멀리 행원리 풍력발전기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곳까지 조망할 수 있습니다.
서우봉은 봉우리가 두 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으며 오름 산상에는 봉수대가 있어 옛날에는 삼양의 원당망과 김녕의 입산망을 연결 시켜주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서우봉 산상에는 묘들이 제법 많이 있습니다. 산상에 공동묘지가 있는 오름도 드물 것입니다. 오름에서 낳고 오름에서 죽는다는 제주인들의 삶과 죽음이 있는 오름일까요···.
한적한 산길에 수북이 쌓인 솔잎을 밟으며 해송 사이로 보이는 바다를 껴안아봅니다.
2004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