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둔지봉

제주영주 2006. 3. 9. 11:26

 

 

 

오름에도 봄이 왔습니다.

둔지봉


 가파른 북사면 쪽으론 소나무와 삼나무로 조림되어 있으며 나무그늘 밑으로 파란 넓은 잎들이 여기저기 눈에 띕니다. 새우난초가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파란 이파리 사이로 꽃대를 세우고 조금씩 고개를 살며시 내밀며 아마도 4월 말쯤 되면 어여쁜 새우란 꽃이 필 듯싶습니다. 헉헉 숨을 고르며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둔지봉 일대에는 선흘곶자왈이 넓게 펼쳐지며 파릇파릇 보리밭들이 봄바람에 일렁이며 봄 내음으로 가득 차오릅니다. 봄바람 속으로 만개의 노란꿈을 꾸는 유채꽃, 반듯하게 난 바둑판 모양 밭들이 아닌, 각자 모양을 취하고 있는 밭들은 저마다 개성이 뚜렷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날씨가 흐릿한 탓에 바다는 흐릿한 하늘 품속으로 꼭꼭 숨어 버리고 웅장한 한라산은 흐릿하게 보일락말락 내내 숨바꼭질을 합니다. 성산일출봉이 저 멀리서 흐릿하게 손을 흔들다 이내 사라져 버리고 오늘은 오름이랑 바다랑 모두 숨바꼭질을 합니다.

 오름에도 봄이 찾아 왔습니다. 봄이 왔다고 봄이 왔다고 노래를 하는 휘파람새 지저귀는 소리에 버석거리는 마른 풀섶 사이로 함초롬하게 자그마한 노란 양지꽃들이 하나 둘씩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둔지봉 남사면 쪽으로는 연이어져 있는 작은 알오름과 무덤들이 오름 천국을 만들어 냅니다. 남사면 쪽으로는 경사가 완만하며 홀씨를 훨훨 날려 보낸 억새풀이 출렁거립니다. 살랑살랑 봄바람이 억새풀을 어루만지며 지나가는 길목에 어여쁘게 피어 오름을 오르는 이들을 반기고 있습니다.

 보랏빛 봉오리를 살며시 열어 고개를 숙인 채 함초롬하게 피어 있는 할미꽃을 만나다니 이 얼마나 반가운가요. 솜털이 뽀송뽀송 마치, 아기 솜털 마냥 보드랍기만 한 할미꽃 어여쁘기도 하여라. 혹여나, 오름을 오르는 이들이 밟고 갈까 안타깝기만 합니다.



▲ 아기 솜털 마냥 뽀송뽀송 보드라운 솜털이 봄 햇살에 반짝이며 눈길을 붙잡습니다. 보랏빛 할미꽃이 어여쁘기만 합니다.



네가

그 자리에 있으므로

빛이 나는 세상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이

그 얼마나 중요한가를

비로소 알게 되는구나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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