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좌보미

제주영주 2006. 3. 9. 11:47

 

 

 

원시의 모습 그 부드러움, 좌보미 

진초록 물씬, "서로 한데 어울려 하나가 되다."

▲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한데 어울러 하나가 되는 오름

 

후텁지근한 초여름, 진초록 물결이 넘실거리는 목장에는 소 떼들이 풍요 속의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푸르게 옷을 입은 산체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좌보미오름, 이 오름은 행정구역상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 속한다. 좌보미오름은 비고 112m, 넓이 4,898m5개의 봉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서쪽에서 보면 숲으로 우거진 하나의 봉우리로 보인다. 주봉 뒤에 숨겨진 큰 봉우리만 해도 4개나 된다. 주변의 작은 알오름과 한데 어우러진 모습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우리네와 같다.

도란도란 어깨를 기댄 채 옹기종기 모인 오름, 속닥속닥 거리는 속삭임이 들려온다. 한발 한발 내딛는 작은 발걸음이 어느새 정상에 다다른다. 시원스레 불어오는 산바람의 폐부 깊숙이 스며든다. 높다란 하늘 아래 펼쳐지는 옹기종기 모인 오름이 신기하다. 좌보미오름 주봉에는 소나무와 삼나무로 조림되어 있다. 모진 바람 탓에 나무들은 크게 자라지 못했다.

그곳에서 서면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파도 소리가 쏴악~ 쏴악~ 들려온다. 마치 바닷가에 서 있는 느낌이 들만큼이나 파도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바닷가 바람이 갯내음 넘쳐나는 파도를 안고 달려왔을까? 바람은 바다 끝에서 불어와 파도를 안고 오름까지 달려왔을까? 나무숲으로 가려 바다는 보이지 않지만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오름에도 출렁거리는 바다가 있나 보다. 그래서 오름에 오르면 파도 소리가 들려오나 보다. 참으로 신기하다. 오름에도 파도소리가 들려온다. 바람이 쏴악~ 쏴악~ 지나가면, 나무들은 일제히 출렁거리며 파도 소리 흉내를 낸다.

능선을 내려갈 때는 발걸음이 가볍지만, 또다시 오르막을 오를 때는 힘겨운 호흡을 해야 한다. 그리곤 승리의 깃발을 꽂으러 가야 한다. 나머지 봉우리들은 민둥산이다. 바람이 적당히 불어와 능선마다 어루만져주며 풀섶 위로 눕는다. 오르락내리락 힘겨운 발걸음이지만 즐거운 산행이다.

오르락내리락 우리들의 삶도 그렇지 않은가? 정상에 올랐는가 싶으면 또 다른 정상이 기다리고 있다. 스스로 산을 만들어 그 산을 넘을 줄 아는 자만이 용기 있는 자가 아닐까. 정상을 향해 자기만의 영혼의 깃발을 펄럭이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만이 성공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영혼의 깃발을 꽂을 때, 대지를 향해 또는 하늘을 향해 환호성을 친다. 그리곤 하늘을 향해 쑥쑥 자라나는 나무처럼 양팔을 벌리고, 짙은 푸름으로 물들어가는 신록처럼 살아간다.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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