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속에 역사는 증언한다.
평화 박물관
추적거리는 빗속을 뚫고 뿌연 안개 속으로 잊혀져가는 역사 기행을 떠난다. 세상은 평온하고 지난 과거의 상흔들은 침묵 속에 잠겨있다. 언제 그랬느냐 듯이 모든 것이 평화로워 보이는 한경면 청수리 평화동. '평화동'이란 이름만 들어도 평화로운 세상 속으로 들어선 느낌이다. 그 모든 것이 화목하며 평화로워 보이는 곳, 평온한 모습으로 야트막한 오름이 눈에 들어온다. 해송과 잡목으로 어우러져 있는 가마오름이다. 이 오름은 비고 51m, 둘레 2,059m 규모로 발굽형 화구를 이루고 있다. 오름명의 유래는 마치 가마솥을 엎어놓은 듯하여 붙여졌다는 설이 내려고 오고 있다. 그러나 '가마'는 검(검·감·곰·굼)(神)에서 온 것이라 하여 신령스런운 오름이라고도 한다.
이 신령스런운 오름에는 일본군에 의해 파놓은 진지동굴이 숨어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오름과 별다른 것이 없다. 오름 기슭에는 아픔과 고통의 흔적이 남아 침묵 속에서 증언한다. 침묵 속의 증언을 따라 깊숙한 어둠 속으로 한발 한발 내디디면, 강제로 징용당한 지역주민들의 절규와 울부짖음이 곳곳에 서려 들려오는 듯하다. 이 진지동굴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은 제58군단을 편성하여 제주도에 배치하면서 군단사령부 격인 요새였다. 이 진지동굴은 최대 규모로 알려진 곳이다. 출입구만 10곳이나 된다. 이 동굴은 수직으로 뚫려있는 2층 미로 동굴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군사령부가 주둔했던 곳이다. 제주지역 일본군 최고 통치구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복잡한 구조로 되어있어서 한번 들어가면 원래 입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미로처럼 얽혀있다고 한다. 동굴의 총 길이는 1.2km다. 제1동굴 300m 구간만 복원하여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나머지 제2, 3, 4 동굴은 현재 미측량 상태다. 최고 2m 정도의 높이까지 패여 있으며, 다수의 방과 회의실, 숙소, 의무실 등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공간이 있다. 세계의 평화를 위해 어둠 속에서 불을 밝히는 호롱불 앞에서 잠시 발길을 멈춰 기원해본다. 다시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아픔을 겪는 일이 없기를….
2004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