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금봉곡 석굴암

제주영주 2006. 3. 9. 12:33

 

 

풍진 세상의 번뇌와 갈등을 씻어내고 

솔향기 그윽한 암자로 가는 길…금봉곡 석굴암,


 깊은 산사로 가는 길목에 핀 들꽃들이여, 가녀린 몸짓 속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이 뿌리를 내리며 희망으로 노래합니다. 그 자그마한 희망의 등불 속으로 한발 한발 내디디며 등불을 밝히는 암자를 찾아서 너의 가녀린 생명의 불을 밝히고 싶습니다.

 아픔이 모두 씻겨 내려가듯이 고개를 숙이며 발을 적시는 눈물이여, 그 靑明의 빛깔로 몸속에 숨어 있는 암세포를 죽일 수 있다면 천길 아닌 만길 이라도 굽이치는 협곡이라도 쉬지 않고 걷고 또 걸을 것입니다.

 아름드리 적송들로 하늘을 가린 산사로 가는 길목이 오르막길은 무거워진 업보를 가득 등에 지고 오르는 길처럼 헉헉거리며 오르게 됩니다. 하도 힘이 들어서 그런지 산사의 풍경들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으며 오로지 묵묵히 한발 한발 떼어 놓을 뿐입니다.

 숨을 헉헉거리며 오르다 보면 어느새 오르막 능선에 다 오르게 되는 곳에 ‘금봉곡석굴암’이란 안내 표지판이 보입니다. 그곳에서 왼쪽으로 조릿대 숲길이 조그맣게 나 있는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아흔아홉 계곡의 첫머리로 알려진 골머리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골머리 양쪽으로는 깊게 패인 계곡이 있으며 정상에 도달해도 정상이란 느낌보다는 고요한 숲 속에 갇혀 있는 느낌뿐입니다. 내가 지금 선 자리가 어디쯤인지 분간하기조차 어려우며 방대한 숲 속에 미약한 인간이 서 있을 뿐입니다.

 하늘을 가린 커다란 나무와 아름드리 적송들이 하늘로 치솟은 듯이 곧게 자란 적송의 매력에 감탄이 저절로 나옵니다.

푸르름을 자랑하며 묵묵히 뿌리를 내린 소나무여, 곧은 절개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하늘로 치솟은 용맹스런 소나무여, 오! 아름다운 소나무! 오늘따라 더욱더 아름다워 보이는 소나무에 넋이 나갔습니다.

 숲은 고요합니다. 묵묵히 우리에게 진리를 말하지만, 아둔한 인간은 숲의 언어를 듣지 못합니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청록빛깔의 청춘이 팔랑거리는 숲은 싱그럽습니다. 숲 속의 기운을 받아서 싱그러운 젊음처럼 하늘 높이 팔랑거리며 높게 지향해봅시다.

 커다란 나무들 사이사이마다 자라는 대나무처럼 높이 자란 조릿대숲, 고요한 숲 속의 정적을 깨우는 소리 스르륵 스르륵 조릿대 숲길을 헤치며 아흔아홉 계곡의 첫머리를 내려와 금봉곡석굴암으로 향했습니다.

 언제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암자지만 오늘따라 염불 소리가 요란합니다. 수능백일 기도를 드리는 어머님들의 지극정성으로 올리는 염원이 석굴암 내에 가득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어머님들의 지극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풀섶에 숨어 청결한 마음으로 고요히 등불을 밝히는 모싯대가 함초롬하게 붉을 밝히고 있습니다.

 석굴암으로 여러 번 갔었지만 오늘은 특별합니다. 그전에는 보지 못했던 기암괴석이 아름드리 적송 사이로 거대하게 서 있는 미륵보살처럼 보입니다.

 나뭇잎 사이로 후드득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는 산사의 고즈넉함으로 더욱더 아름다워 보이는 산이여! 숲이여! 나무여!

 비를 흠뻑 맞은 싸릿꽃의 인사를 받으며 석굴암을 내려왔습니다.


석굴암으로 가는 길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인생처럼

자욱한 안개 사이로 석굴암으로 향해 가는 길


혼자 가는 산행은 엇갈린 생각들을

조금씩 풀어가는 길이다


안개비에 촉촉이 젖은

청단풍 이파리 사이로

날아드는 산새들의 인사말


등불을 밝히는 영산홍 꽃잎들 사이로

마음을 닦아 내리는 계곡의 물소리


가득 찬 마음들을

하나씩

비워내야 하는 마음


석굴암으로 가는 길은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나

산새처럼 빈 몸으로 살아가는 일이다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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