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고근산

제주영주 2006. 3. 9. 12:35

 

 

인간과 자연의 일체 "초록의 공명(共鳴)을 예찬하다." 

비 오는 날 찾은 고근산 

 

 

 

밤새 빗소리가 정겹도록 자장가를 불러주더니, 아침이 되어서도 비는 그치지 않고 천둥과 함께 빗방울 소리는 요란하다. 비가 내리는 아침은 누군가가 나를 위해 푸짐한 식탁을 마련하기 위해 무언가 볶아대는 느낌이다. 비가 내리는 날은 늘 행복 속에 단잠을 잘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비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비는 마음을 안정시켜준다. 사색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태풍이 지나가면서 그동안 메말랐던 대지를 촉촉이 적셔 내려줬는데도, 고마운 비가 며칠째 내리고 있다. 비가 내리는 날은 산책코스가 마련된 오름이 좋다. 고근산은 산책로가 정비돼 있으며, ‘엉또폭포까지 볼 수 있어 비오는 날 오름 탐방하기에 제격이다.

고근산은 비고 171m, 둘레 4,324m의 규모로 원형 분화구를 가진 오름이다. 오름 정상에선 서귀포시의 풍광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다. 고근산은 한기팔 시인의 시로부터 시작된다.

 

고근산(孤根山)

 

 

아내에게 말한다

죽어서 우리 둘이는

들풀에 메이는 바람이 되어

풀잎을 흔들다가

죽어진 죄로

죽어진 죄로

孤根山忘然히 오르내린다

 

근처에 산이 없어 외로워 보이는 산, 그래서 붙여진 이름 고근산’, 비가 내리는 날에 오르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산책코스가 잘 정돈되어 오름을 오르는 이들이 한결 쉽게 오를 수 있다. 오름 정상에 올라서면 아름다운 서귀포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고무판을 깔아놓은 산책길을 따라 원형의 굼부리 주위를 한 바퀴 돌 수 있다. 풀섶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들꽃의 향기를 맡으며 찬찬히 거닐어도 좋다. 벤치에 앉아 가을을 노래하며 아름다운 서귀포칠십리를 바라볼 수 있는 오름, 고근산!

어느덧 들녘마다 가을 손님이 하나둘씩 찾아와서 풀섶을 흔든다. 고운 향기를 살며시 보내오는 가을꽃들이 줄지어 피어난다. 안개 속으로 작고 앙증스러운 하얀 꽃이 바짓가랑이를 붙잡다. 하얀 나비처럼 나풀거리며 향기로운 꽃향기가 솔솔 풍겨온다. 무슨 꽃일까? 쑥부쟁이도 아니고 들국화도 아닌 꽃, 가을임을 알리는 이 꽃의 이름은 무엇일까? 순백의 미로 다가와서는 마음 한 자락에 꽂혀버린 주인공은 참취다. 곰취와 같이 향이 독특하다. 어린잎은 우리의 식탁에서도 인기 있는 취나물이다. 취나물의 잎이 바로 참취의 잎을 말한다. 가을을 알리며 손짓하고 있음이 더욱 아름다운 참취의 향기에 취해본다.

그곳에 내가 있으니 그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곱디고운 풀꽃들이 철 따라 피어나는 오름은 쓸쓸함 속에도 외롭지 않으리라. 폭풍이 몰아쳐도 다시 일어서는 풀들이여! 그대들이 있어 한결 든든한 세상, 아름다운 세상이다.

 

비 내리는 고근산

 

점점이 떠 있는 섬들마저 숨는다

바다는 간데없고

온통 나풀거리는 안개의 날개 자락 속으로 숨는다

보일 듯 말듯 원형의 부리가 살며시 열리면

사르르 바람 결속으로

띠들의 슬픈 언어로 가득 채운다

오름은 간데없고 오로지 나무숲 사이로

저벅저벅 들려오는

쓸쓸한 소리

능선마다 풀섶의 외로움만 스치운다.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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