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오름기행

제주영주 2006. 3. 9. 12:57

 

 

한없이 큰 자연의 가슴을 부둥켜 안는다. 

 "자연과 더불어 우리는 하나" 


 가을이 되면 각종 단체들은 단합대회를 열거나 야유회를 합니다. 직원들과 함께 또는 가족과 함께 오름을 오르는 것은 서로 간에 협력을 도모하고 자연에서 겸손함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오늘은 극동방송직원들과 함께 깊어가는 가을 산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금오름 정상까지 시멘트포장도로가 되어 있어 차로 쉽게 갈 수 있으나 금오름(거믄오름) 표지석 곁에 차를 세워두고 가파른 능선을 따라 올랐습니다. 길섶으로 마중 나온 들꽃들이 해맑게 웃고 있습니다. 간밤에 하늘이 갈라지는 천둥소리에 심장을 떨리며 어둠을 헤치고 이겨낸 들꽃들이 반겨주고 있음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끔찍했던 밤이었지만 이렇게 이겨내고 햇살을 향해 소담스럽게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거야.” 애기달맞이꽃이 입을 오므린 채 중얼거림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해맑은 들꽃들의 눈인사를 받으며 한발 한발 내딛다 보면 정상에 서게 됩니다.

 원형 분화구 안에는 산정화구호가 있습니다. 그러나 밑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수량은 적은 편입니다. 간밤에 비가 흠뻑 내린 후, 금오름을 찾아간다면 만족할 수 있는 오름입니다.

 분화구 안으로 하얀 양떼들이 산정화구호까지 내려가 목마름을 해소 시킬 듯한 느낌이 들만큼이나 은빛억새들의 눈속임 수가 예쁘기만 합니다. 황금 갈기를 휘날리며 조랑말들의 말발굽소리가 이시돌목장 초원을 향해 달려오는 것일까요. 황금 갈기를 휘날리는 오름의 색은 곱디곱습니다.

 오름에 서면 가끔은 파도를 안고 달려오기도 하고 소곤소곤 거리는 속삭임이 들려오기도 하고 풀피리 소리가 잔잔히 흐르기도 합니다. 오름의 연주곡은 늘 다르게 다가옵니다. 사르륵사르륵 옷깃을 스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가을을 눕히고 곧, 겨울바람이 거센 바닷바람을 안고 달려올 것입니다. 그러면 흐드러지게 핀 은빛물결이 홀씨를 털어내고 빈 가슴으로 들판에 서서 꽁꽁 얼어붙은 채로 빈 몸으로 외롭게 흔들겠지요. 그렇게 가을을 보내고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다시 우리 앞에 하얀 손을 흔들며 어김없이 찾아와 주겠지요. 다음을 약속하며 은빛노래 속에 하산을 하여 정물오름으로 향했습니다.

정물오름은 얼마 전에 올랐던 오름이지만 다시금 오르고 있습니다. 말굽형화구 안으로 포근히 안겨있는 무덤들은 마치 어머님 품속에 안겨 있는 듯합니다. 정상에 도달하자 폐부 깊숙이 들어오는 찬바람에 꽃들도 하나 둘씩 지고 휑하니 불어오는 바람만이 정상을 맴돌다 이 오름 저 오름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혹여나, 오름을 찾는 이들이 쓸쓸할까 봐, 앞서 피어난 꽃들이 자리를 내주자 꽃향유들이 오름 자락을 화려하게 보랏빛으로 채색해 놓습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요? 그들마저 피어나지 않았다면 오름은 쓸쓸할 것입니다. 휑하니 바람이 휩쓸고 가더라도 아직은 그들이 있기에 쓸쓸하지 않습니다.

늘 언제나 기쁨을 주는 들꽃들에 감사를 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들꽃처럼 누군가에게 기쁨을 선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게 겸손하게 세상을 바라보면서 새미소오름으로 향했습니다. 새미소오름은 여러 번 갔던 오름입니다. 옹기종기 모인 다섯 개의 봉우리들이 널따란 호수를 품고 있는 새미소오름은 언제나 편안하게 찾아갈 수 있는 오름입니다.

 은빛물결 출렁임이 호수 안으로 들어와 가을은 깊어가고 호젓한 호수는 억새춤결에 따라 노를 저어 깊어가는 마음의 호수를 열어놓습니다.

오름에 오르면


자그마한 들꽃으로

겸손하게 피어나

기다림을 배운다


들꽃처럼

세상을 보는

눈이 트이게 되며


마음으로

뜨겁게 안을 수 있는

너와 내가 된다


2004년 11월

'오름 그리고 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자봉  (0) 2006.03.09
통오름  (0) 2006.03.09
천아오름  (0) 2006.03.09
송악산  (0) 2006.03.09
가을 한라산  (0) 2006.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