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신령스런 영아리

제주영주 2006. 3. 9. 13:11

 

 

겨울연가 속으로 떠나는 신령스러운 오름

영아리, 마보기

 

▲ 신령스러운 오름, 영아리

금빛 풀섶으로 드리워진 마보기오름 초입, 홀씨를 훌훌 털어버린 억새의 겨울연가가 들린다. 누런 억새풀의 청빈함 속에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진다. 마보기 오름은 서귀포시 안덕면 상천리에 속한다. 마보기오름은 표고 560m, 비고 45m, 둘레 859m의 규모로 야트막하여 한결 편안하게 오를 수 있다.
함박눈이 흩뿌리며 스치고 간 빈 들녘에서 마음을 녹여주는 자연의 노랫소리를 듣는다. 음악은 귀로 듣는 것만이 아니듯이, 가슴으로 들려오는 미세한 고운 선율이 산들바람에 실려 봄비처럼 잔잔하게 밀려온다. 사르륵사르륵 사락사락 옷깃을 스치는 풀섶의 노래가 슬프면서도 아름답다. 잿빛 하늘이 낮게 드리워져 더욱 슬프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슬픔을 깨는 것은 역시 수많은 오름을 거느리면서 정겹게 펼쳐지는 위대한 자연이다.
우뚝 솟은 산방산이 제일 먼저 반긴다. 그 너머에 가파도. 마라도가 달려온다. 마보기오름 주변에 산재해있는 오름을 호명한다. 골른오름, 신령스러운 영아리 등을 호명하면 이웃해있는 오름까지 거느리며 달려온다. 편안한 마보기와 달리 영아리로 향하는 길은 고행의 시작임에도 불구하고 즐겁기만 하다. 하얀 눈 위에 남겨진 노루 발자국이 앙증스럽다.
삼나무 숲을 지나 가시덤불을 헤치며 걷다보니 어느덧 영아리오름 기슭에 다다랐다. 마치 원형의 굼부리처럼 생긴 습지가 펼쳐진다. 습지를 지나 커다란 바위를 오르면서 위험한 암벽등반이 시작된다. 마치 바위산을 오르는 것 같다. 아슬아슬하다. 영아리는 오름이란 명칭보다는 산이란 명칭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산체가 크며 쉽게 허락하지 않는 산, 겸손함을 배울 수 있는 산. 그 험난한 바위를 오르면 정상부가 펼쳐진다. 영아리오름은 표고 693m, 비고 93m의 규모로 말굽형의 분화구를 가진 화산체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바다 건너 오름 징검다리를 건너 신령스러운 영아리오름에 도착했나 보다. 힘겹게 올라서 그런지 정상에 선 느낌은 여느 오름 정상과는 사뭇 다르다. 겨울바람치고는 포근한 바람이 불어온다. 마치 연인의 부드러운 속삭임처럼 감미롭다. 부슬부슬 이슬비가 내리는 것조차 감미로운 선율처럼 느껴진다.
5m 남짓한 큰 바위, 서로 마주 보고 속삭이는 듯 다정한 쌍 바위를 비롯해 여기저기 커다란 바위들이 정상부에 흩어져 있는 것이 신비롭다. 흐릿한 날씨 탓에 주변을 조망할 수 없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그 아쉬움으로 인해 또다시 영아리로 향할 수 있는 날을 기다려본다. 신령스러운 오름을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겸손한 자세로 조급함을 버리고 느긋한 마음으로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오름이다.
겨울 속의 봄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이 비가 그치며 노란 복수초도 살며시 얼굴을 내밀 테지….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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