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민오름

제주영주 2006. 3. 9. 13:10

 

 

순백의 하얀 추억…雪來는 삼나무 숲길 '그 속으로'

눈밭 위에서 '추억 스케치'

 

▲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운 겨울 삼나무 숲길은 귀빈사로 가는 길입니다

솜털 같은 눈송이가 하늘하늘 사뿐히 하얀 깃털을 펄럭인다. 마치 아름다운 동화 속으로 안내할 것만 같은 겨울 아침. 화롯가 옛이야기처럼 속닥속닥 거리듯 산수화가 펼쳐진다.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끝도 보이지 않는 기다란 삼나무 숲길, 곧게 뻗어있는 송당목장 삼나무 숲길은 고요 속에 옛이야기가 숨겨있다.
하늘에는 작은 천사들이 날개를 펴며 싱그러운 삼나무마다 은빛으로 물들이고 있는 첫길을 걷는다. 고요를 깨트리는 발걸음 소리, 뽀드득뽀드득 그 누구도 걷지 않는 첫길을 걷는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다. 하얀 솜사탕 같은 눈길에 추억의 발자국을 남겨 놓는다.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일까? 이렇게 순백의 아침을 누린다는 것은 또 하나의 행복이며 축복이다. 삼나무 숲길 사이로 언뜻 귀빈사가 보인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 귀빈사다. 앙상한 가지만 남긴 팽나무 한 그루가 먼저 반긴다. 앙상한 팽나무 뒤로 40평 쯤 돼 보이는 단층 건물이 덩그러니 외로운 세월을 이야기하고 있다. 스산한 마당에서는 제 몸을 비벼대며 울고 있는 대나무 울음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온다. 그 울음을 달래기라도 하듯이 그 당시 심어놓은 동백꽃 몇 송이가 그나마 반겨주고 있음이 감사할 뿐. 초라한 정원을 감추듯 하얀 눈으로 하얗게 덮여있다.
송당 민오름 서사면 기슭에 있는 귀빈사는 겨울보다 더한 외로움으로 털컹거리고 있다. 민오름 정상에 올라서니 매서운 칼바람으로 하늘을 덮고 세상을 지휘하듯, 칼바람 지휘 속에서 보드라운 속살 같은 눈 위에 누워 겨울 하늘을 쳐다본다. 세상은 평화로워 보이고 아름다운 겨울 나라다.
민오름은 민둥산을 일컫지만, 정상을 제외하고는 삼나무로 숲을 이루고 있어 민오름이란 이름이 어색할 뿐이다. 풀밭으로 되어 있는 정상에는 소복이 쌓인 설원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말굽형 분화구 안에는 쌍묘가 있다. 다정스럽게 누운 쌍묘처럼 다정하게 손을 잡고 저승에서도 외롭지 않은 그들의 사랑이 하얀 눈처럼 아름다워 보인다. 동북향으로 터진 굼부리 안으로 높은오름이 안겨 온다.
이웃해 있는 칡오름, 나무가 무성한 거슨새미, 원형의 아부오름, 백약이, 여러 개의 봉우리로 뭉친 좌보미 모두 아름다운 순백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동사면 기슭에 있는 목장을 지나 돌이미로 향하는 길은 마치 동화 속 설원의 땅처럼 하얗게 덮여있다.
동심의 세계로 들어가 눈 뭉치를 만들어 눈싸움을 하다 지치면, 눈사람도 만들어놓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설원이다. 옹기종기 모인 오름군이 펼치는 산수화에 빠져들면서 돌이미오름을 오른다. 돌이미는 둥그렇게 능선이 돌려져 있어 돌이미라고 불린다. 그러나 제법 큰 바위들이 산재해있는 오름이다. 휘감아 돌아가는 능선을 따라 민틋한 비치미로 발길을 옮긴다.
비치미에서 바라보는 개오름은 든든해 보인다. 산등성이를 따라 오름 한 바퀴를 돌면서 설원의 아름다운 왕국을 찬찬히 살펴본다. 성불오름, 저 멀리 하얀 알몸으로 누운 따라비오름, 설원의 아름다운 오름군처럼 이 세상도 아름다운 이야기들로 즐비하게 엮어갔으면 한다.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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