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진물굼부리

제주영주 2006. 3. 9. 13:14

 

 

인내하는 생명이 있는 겨울 숲

진물굼부리에서 절물오름으로 "나목들의 겨울연가"

 

▲ 키재기를 하면서 쏙쏙 돋아나는 새싹

겨울은 고요하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에서도 쉬지 않고 자연은 시나브로 변모해간다. 어제의 그 시간이 아니다. 오늘의 소중한 시간으로 내일을 꿈꾸는 시간으로 희망이 꼼지락거리며 파릇한 새순이 움트고 있다. 아삭아삭한 雪을 뚫고 용감하게 일어선다. 키재기를 하면서 쏙쏙 돋아나는 새싹 무리가 용감하다. 겨울 새싹처럼 용감하게 일어서야지 하는 다짐을 다시 한 번 해본다.
겨울 나목들이 울창한 진물굼부리. 제주시 봉개동에 위치한 진물굼부리는 비고 25m 둘레 1,171m로 남서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분화구가 있다. 오름 전체가 낙엽수와 상록활엽수로 울창하다. 진물굼부리는 거친오름과 절물오름에 비해 야트막하여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진물굼부리는 자연림으로 무성하여 노루의 길만이 남겨져있다. 무성한 숲을 헤맨 끝에 삼나무로 빽빽이 들어찬 절물휴양림으로 들어선다.
하늘을 가린 삼나무 숲길을 걷는다. 마냥 걸어도 좋다. 절물휴양림은 사계절이 아름다운 곳이다. 그 어느 때 찾아가도 아름다운 숲이다. 혼자 쓸쓸히 걸어도 좋다. 벗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며 걸어도 좋다. 서로 고민을 훌훌 털어놓는다. 숲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어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도 숲은 소문을 내지 않는다. 푸념을 늘어놓으면, 어느새 하늘을 가린 숲이 집어삼킨다. 훌훌 털어버린 마음의 창에는 푸르름으로 넘쳐나기 시작한다.
그 모든 것도 용서가 된다. 미움도 사라지고 오로지 사랑으로 다가온다. 때로는 겨울나무의 강인함과 신록으로 푸르른 상록수처럼 변함없는 사랑을 배울 수 있다. 그래서 숲이 좋다. 오름이 좋다. 마음을 조금씩 털어내는 오름, 그 비움의 그릇에 넘치지 않을 만큼의 욕심도 조금씩은 담아본다.
꽁꽁 얼어붙은 연못 너머로 겨울 절물오름이 펼쳐진다. 얼어붙은 연못을 지나 약수 한 모금 마시고 등산로를 따라 오른다. 겨울 숲을 깨우는 것은 까악~ 까악~ 산까마귀들의 인사 소리다. 가끔 푸드덕 날아오르는 꿩의 날갯짓에 놀라기도 한다.
두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 절물오름은 큰대나, 족은대나라고 부르기도 한다. 큰대나 정상에는 외롭게 선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올라 고즈넉한 풍경 속으로 여행을 떠나본다. 원형의 굼부리 안으로 안겨 오는 족은대나 그 너머로 오름군이 펼쳐진다. 마치 나를 위해 빙 둘러싸인 듯하다. 세상은 나를 위한 세상인 듯싶다. 고즈넉한 풍경 속으로 오름군이 안겨 온다. 고깔모자를 쓴 듯한 민오름, 거친오름, 개오리 형제들 너머로 물장오리, 흐릿한 날씨 속에서도 한라산 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한라의 맥을 따라나선다.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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