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오름, 그리고 오는 것과 가는 것 사이…,
봄이 오는 길목 2월에 부쳐
▲ 봄은 다가와 있습니다. 겨울잠을 깨고 일어서는 싹들이 씩씩하기만 합니다.
창을 열면 금방이라도 쑥 향으로 넘쳐나는 봄의 향긋한 내음이 넘쳐날 듯합니다.
금방이라도 언 땅을 녹이며 꼼지락 꼼지락 봄이 소리가 들려올 듯한 오름으로 달려갔습니다. 속닥속닥 간지럼 태우며 봄이 오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긴 겨울잠에서 기지개를 켜며 일어서는 희망의 새싹이 돋아나는 봄이 꿈틀거림이 들려옵니다. 아가야 입처럼 오물거리며 쏘오옥 내미는 불그스름한 입술이 앙증스럽습니다.
어떤 빛깔로 봄 소식이 전해올까? 아가야 얼굴처럼 천진스런 웃음으로 또는 볼그스레 붉어지는 첫 마음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봄 소식이 전해올까?
절물휴양림 동쪽 맞은편에 우뚝 자리 잡은 민오름 입구에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민오름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울창한 자연림으로 뒤덮여 있으며 잡목과 잡풀이 뒤엉켜 있어 능선을 따라 오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뒤엉켜 있는 잡목을 헤치고 오르기에는 겨울이 적절합니다.
민오름 입구에 세워진 표지판에는 ‘송낙(무당이 쓰는 고깔의 제주어)을 닮았다 하여 무녜(무녀)오름, 민오름을 한자로 대역하여 민악(敏岳)이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고깔을 닮은 봉우리가 주봉을 이루며 서너 개의 작은 봉우리들로 완만하게 기복을 이루고 있는 민오름의 매력은 한라의 맥을 확연히 확인할 수 있는 데 있습니다.
산상에서 바라보는 여덟 폭짜리 동양화를 펼쳐 놓고 빙 둘러가면서 감상을 합니다. 굵직한 곡선을 그려놓고 거기에 산수화를 담아 놓았습니다. 그 너머로 아련히 보이는 부드러운 능선의 미가 흐릿한 날씨 속에 가려 보일락말락 가려 있습니다.
한국의 미가 숨겨 있듯이 애를 태우며 살며시 걷어올리다 살며시 가려 놓습니다. 또한, 굼부리 안에 숨겨진 봄의 천사들이 숨결도 오름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입니다.
입춘도 지났으니 곧 봄의 천사들이 꽃 웃음을 뿌려 놓을 것입니다. 같은 꽃이라 하여도 오름에서 보는 꽃은 사뭇 다릅니다.
꽃잎마다 기품이 담겨있는 자태의 모습이야말로 오로지 자연에서 잉태하는 고고한 생명력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같은 꽃을 보더라도 오름에서 보는 꽃은 한결 숭고해 보입니다.
숲은 고요 속에서 긴 침묵을 깰 봄 소식을 전해줄 봄꽃들의 연주를 기다립니다. 마음을 녹여줄 연한 봄빛으로 감쌀 듯한 봄 편지를 기다리면서 민오름 동쪽으로 마주하고 있는 지그리오름으로 향했습니다. 목장을 지나 오름 기슭에 세워진 철탑은 마치 맥을 자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처럼 문명이란 인간의 편리 속에 만들어지면서 자연의 하나의 맥을 자르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오름 전사면이 무성한 자연림으로 뒤덮여 있으며 기슭에는 조천읍목장이 펼쳐집니다.
숲길을 걷는 것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특히 겨울 숲은 더욱 그렇습니다. 새들마저 자취를 감춰버린 고요한 숲, 긴 겨울잠에 빠져든 숲을 깨우는 것은 역시 바람입니다.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숲을 깨우기도 하고 살살 간질이며 숲을 깨우기도 합니다. 한 뼘의 햇살이 바람의 등을 타고 내려오기도 합니다.
낙엽으로 수북이 쌓인 숲길, 흰 눈으로 덮인 숲길, 파릇한 생명이 돋아는 숲길, 풀피리소리 들려오는 숲길, 오름에서의 숲길은 낭만의 길입니다. 사색의 길입니다. 그래서 오름을 좋아하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오름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곡선미 또한 오름이 주는 매력입니다.
어떤 붓으로 그려 놓았을까? 겨울 오름을 바라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동양의 미에 감탄사가 저절로 나옵니다. 자연은 바로 동양의 미 그 자체입니다. 자연이 그려내는 동양의 미 그것이 바로 우리 것입니다.
지그리오름에서 바라보는 민오름은 또렷이 모습을 내보입니다. 고깔 모양의 봉우리가 주봉이며 서너 개의 작은 봉우리들이 완만하게 기복을 이루면서 북동쪽으로 길게 이어져 지그리와 맥을 잇습니다. 한라의 맥이 손에 손을 잡고 바다로 뻗어갑니다.
2005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