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산방산

제주영주 2006. 3. 9. 13:17

 

 

봄은 왔지만 그 아름다움 속에는 슬픔이 남아 있네

늘푸른 산, 산방산


▲ 여러 개의 봉우리가 한데 어우러져 우뚝 솟은 산, 산방산

 한라산 백록담의 부악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한 산, 상록수의 청록빛으로 삼백예순날 파도를 일렁이며 거친 바람을 걸러내어 맑고 고운 청록빛으로 숨 쉬는 산방산을 일 년 만에 다시 올랐습니다. 작년 2월에 산불이 나서 그 얼마나 속이 상했던가. 다행히도 싱그러운 이파리로 가득 넘쳐났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건재할 수 있게 해주셔 감사합니다. 이 아름다운 산을 다시 오를 수 있어 또한 감사합니다.

 산방산은 저 멀리서 바라만 봐도 심장이 멈출 듯이 가슴이 벅찹니다. 멀리서는 하나의 봉우리로만 보이지만 여러 개의 봉우리로 한데 어우러져 우뚝 솟은 산, 영산입니다.

 산방산 입구 양지바른 곳에 개불알풀이 자그마한 꽃잎을 열어 놓아 하늘을 담아 놓았습니다. 꽃잎 속에는 하늘처럼 고운 얼굴이 활짝 웃고 있네요. 개불알풀은 다른 말로 '봄까치꽃'이라 합니다. 봄까치꽃 이름만 들어도 풋풋한 봄나물이 생각나며 만발하게 핀 봄꽃이 생각납니다. 봄까치꽃은 빈터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풀꽃입니다. 북한명으로는 '왕지금꼬리풀'이라 합니다. 이렇게 하나의 꽃을 가지고도 이름이 여러 개 있습니다. 하나의 꽃을 보고도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듯이 이름도 여러 개인가 봅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왕지금꼬리풀이든 봄까치꽃이든 개불알풀이든 이 모두 순수한 우리말이니 좋습니다. 정겹습니다.

 파릇파릇 싱그러운 보리밭 돌담길을 지나 북사면쪽 가파른 골진 곳으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소나무숲을 지나면 우뚝 선 바위가 반깁니다. 여기저기 우뚝 솟은 장군바위들이 산방산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늘을 가린 산속으로 들어갑니다. 숲의 소리를 듣습니다. 나무의 언어를 듣습니다. 삼백예순날 청록빛으로 물들어 늘 푸른 청록빛의 언어입니다. 거친 바람을 이겨낸 이파리의 끈질긴 생명력의 언어입니다. 도도하면서도 고고한 언어입니다.

 햇살이 내려옵니다. 무지개 빛깔로 산속으로 내려와 앉습니다. 투명한 햇살이 생명력을 불어 넣습니다. 보답이라도 하듯이 동백꽃이 피었습니다. 붉게 타오른 열꽃이 피어 가슴에 꽂힙니다. 뜨거운 밀어들이 가슴에 꽂히며 툭! 툭! 낙하합니다. 동백꽃처럼 아름답게 낙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추한 모습이 아닌 떳떳한 모습 그대로 뜨거운 가슴 그대로 식지 않은 채, 툭! 낙하하는 동백꽃처럼 살다 가야지···.

 그늘진 곳에서도 생명은 잉태합니다. 키 작은 나무 자금우 열매가 초록이파리 틈새로 앵두처럼 달려 반짝입니다. 묵은 낙엽을 밟으며 지나갑니다. 한때는 싱그러운 언어로 피리를 불며 노래했을 것입니다. 이제는 낙엽으로 돌아가 조용히 흙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동백나무,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등으로 울창합니다. 청록빛 이파리로 하늘을 가려 놓았습니다. 고요한 숲길에는 지난 과거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아무 말 없이 지난 과거의 흔적을 밟으며 침묵합니다. 침묵하면 들려오는 언어가 있습니다. 바람의 언어와 나무의 언어 그리고 소중한 자신만의 언어입니다. 언어의 빛깔은 무색입니다.

 싱그러운 이파리가 반짝이며 파도를 안고 달려옵니다. 쏴아악~ 쏴아악~ 출렁이며 싱그러운 물결이 일렁입니다.

 일명 '선인탑'이라 불리는 바위에 올라 신비로운 섬, 파노라마가 연출되는 풍광을 바라보노라면 신선이 따로 없습니다. 우뚝 솟은 장군바위 아래로 펼쳐지는 사계 해안선 곡선을 따라 달려갑니다. 금방이라도 용머리를 들고 반짝이는 용비늘을 꿈틀거리며 넘실거리는 바다로 달려갈 듯합니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형제도, 슬프게 울어대는 파도의 울림을 가슴으로 안고 있는 송악산, 가파도, 최남단 마라도, 은비늘 반짝이며 바다의 꿈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바다를 껴안습니다. 모슬포 일대가 평화로워 보입니다. 그러나 그 평화로움 속에는 지난 과거의 상흔이 남아 있습니다. 알뜨르평야에 건설했던 일본해군항공대 알뜨르비행장, 격납고, 수많은 진지동굴 등 일본강점기의 군사지역인 모슬포지역은 수많은 상흔이 잔재합니다. 그 평화롭고 아름다움 속에 숨어 있는 지난날의 비운의 흔적이 산방산에도 있습니다. 하산을 하다 7부 능선 쪽으로 발길을 돌려 일본강점기에 파 놓은 진지동굴로 향했습니다. 슬픈 영혼의 메아리 속으로···.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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