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오월의 한라산

제주영주 2006. 3. 9. 13:51

 

 

5월 한라산 "단풍 부럽지 않은 꽃물"

봄의 끝자락…산철쭉·진달래 흐드러져

▲ 오월의 한라산

 

어둠이 내려앉은 어리목광장으로 별들이 총총 반짝이며 내려온다. 별빛과 랜턴의 불빛만을 의지한 채 어둠이 깔린 어리목 숲길을 조심조심 한발 한발 내딛는다. 한라산을 행해 어둠의 자락을 한 올 한 올 걷히며 오른다.

뻐꾹새가 뻐꾹~ 뻐꾹~ 모습을 감춘 채 제일 먼저 반긴다. 서서히 어둠의 자락이 걷히자 초록으로 단장한 숲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울울창창한 숲속에 갇혀 버려도 좋을 만큼이나 신선한 새벽공기가 살며시 불어온다. 한라산에는 개구쟁이 새가 있나 보다. 그 소리가 어찌나 재미있는지 마치 누가 장난을 치는 것처럼 워워워~ 워워워~·”모습을 감춘 새가 지저귄다. 그에 화답으로 그래 반갑다. 워워워~ 워워워~ ” 새들을 행해 숲을 행해 노래를 불러본다. 이렇게 숲은 아름다운 소리로 언제나 반긴다.

어리목 숲을 벗어나자 서서히 여명이 밝아온다. 어슴푸레 모습을 드러내는 오름. 제일 먼저 반겨주는 사제비동산에서 시원스러운 샘물을 마시고 난후 천국의 길로 접어든다. 꿈처럼 펼쳐지는 천국의 등산로에는 설앵초가 제일 먼저 반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설앵초일까. 설앵초는 고산지대의 양지바른 풀밭에서 자라는 아름다운 꽃이다. 빽빽이 자란 조릿대 숲 사이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피어난다. 이 어찌 고맙지 않을까. 주로 분홍색 설앵초가 주종을 이루지만 가끔 하얀 꽃을 피우는 흰설앵초도 드물게 있다. 오늘은 행운이다. 제일 먼저 반겨주는 설앵초 중 흰설앵초도 있다. 순백의 흰설앵초의 자태는 황홀하다. 이렇게 뜻하지 않게 들꽃은 다가와 기쁨을 준다. 설앵초의 인사를 받으며 윗세오름 대피소로 향한다.

이제 서서히 붉은 해가 솟아오르며 보석 같은 귀중한 하루를 선물 받게 된다. 이 또한 아름다운 날을 선물 받는다. 귀중한 들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나는 한라산과 함께하는 귀중한 선물이다.

누운오름은 평온한 자태로 부드러운 곡선미를 자랑하며 누워있다. 아름다운 설앵초의 인사를 받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윗세오름 대피소에 다다른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간단히 컵라면을 먹고 나서 지상낙원의 무릉도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지상낙원의 무릉도원으로 가는 등산로에는 흰그늘용담이 화들짝 피어나 하늘을 향해 나팔을 불고 있다. 아름다운 관악기의 울림이다. 오월의 악기, 흰그늘용담이 윗세오름 주변에 지천으로 피어나 고운 울림으로 가득 펴져 간다. 오가는 산행인을 향해 또는 하늘을 향해 나팔을 부는 작은 꽃, 흰그늘용담은 고산지대 양지바른 곳에 자라는 아름다운 들꽃이다. 언뜻 보아서는 구슬봉이와 비슷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흰그늘용담이란 이름으로 보아서는 그늘에서 자라는 꽃인 줄 알지만, 햇살이 잘 비추는 양지바른 곳에서 자라는 작은 들꽃이다. 흰그늘용담의 나팔소리에 행보를 맞추며, 지상낙원의 선작지왓에 펼쳐지는 진달래밭으로 발길을 옮긴다. 탄성을 지르며 곱게 물든 진달래 꽃향기에 취해본다. 지상낙원의 무릉도원이다. 오월의 한라산은 작은 들꽃에서부터 화려하게 펼쳐지는 진달래와 산철쭉으로 곱게 물든다. 큰윗세오름 너머로 부악이 웅장하게 솟아있다. 언제나 당당한 한라의 맥 소리를 들으며 힘찬 발걸음으로 또 다른 내일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보고 싶어 했던 백작약이 피어있다. 석가탄신일을 맞아 흰 연등을 켜 놓은 듯 백작약은 풍선처럼 금방이라도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듯하다. 그렇게 오르던 한라산에는 들꽃이 지천으로 피고 있음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지 못했던 지난날의 아쉬움만 남는다. 들꽃의 소리에 눈을 뜨고 보니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너무나 아름다운 들꽃이 지천으로 피고 지고 있다.

, 작은 꽃잎의 흔들림이 들려온다. 영실기암 쪽으로 하산하는 등산로에는 각시붓꽃, 애기괭이밥, 개별꽃, 노란제비꽃, 제주양지꽃, 바위미나리아재비 등이 햇살처럼 피어 반긴다. 세바람꽃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세바람꽃은 우리나라에서는 오로지 한라산에만 볼 수 있다. 순백의 꽃, 세바람꽃은 숲 그늘에서 자란다. 작고 가냘픈 꽃대를 세우고 바람처럼 한들한들 불어오면서 수수한 하얀 빛깔로 다가온다. 세 개씩 꽃을 피운다 하여 세바람꽃이라 한다. 세바람꽃은 변산바람꽃, 꿩의바람꽃의 봄 편지를 이어받아 바람꽃을 보지 못한 이들을 위해 5월의 한라산에서 하얗게 피어난다. 오가는 산행인의 마음에 한 떨기 꽃으로 오월의 봄 편지를 부친다.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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