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5월의 한라산

제주영주 2006. 3. 9. 13:57

 

 

작은 꽃잎 숨결이 들려오는 산, 한라산

백록담을 향해 가다.

 

▲ 한국특산종, 금강애기나리

 

연둣빛으로 커튼을 드리우고 하늘을 가려놓는다. 연둣빛을 뚫고 햇살은 살포시 내려와 울창한 숲 그늘 음지 속까지 비춘다. 지상으로부터의 꿈틀거림에 작은 꽃잎이 파르르 떨리며 꽃잎을 피워낸다. 은빛 햇살을 보듬은 해맑은 꽃의 웃음을 선사 받으며 산길로 접어든다.

키 큰 나무 그늘에서 자라는 작은 꽃들을 찾아서 떠나본다. 숲으로 하늘로 산새들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한적한 숲길을 지나 연둣빛으로 커튼을 드리운 산길을 걷는다. 상큼한 산바람에 마음도 한결 가볍다. 고요한 산길의 주는 선물을 실타래처럼 솔솔 풀어가면서 산행을 한다. 몸살감기로 피곤함에 지친 육신을 상큼한 바람의 깃털로 털어낸다.

탐라계곡을 지나 개미목을 오른다. 산바람이 시원스레 적당히 불어온다. 산바람의 흔들림 속에 꽃이 피었을까? 하얀 꽃봉오리를 오므린 채 수줍은 은난초, 은대난초가 반긴다. 은대난초만 처음 봤을 때는 구분하지 못했다. 은대난초를 은난초로 착각을 했으니까. 한라산은 은난초와 은대난초를 함께 보여준다.

은난초와 은대난초는 비슷하다. 은난초의 포엽은 짧지만, 은대난초의 첫째 포는 꽃차례보다 길고 끝이 뾰족하다. 마치 댓잎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은대난초'란 이름이 붙여졌나 보다. 은난초, 은대난초는 꽃잎을 열어주지 않는다. 마치 꽃의 언어를 숨겨 놓고 남몰래 꽃잎을 열어 은밀한 사랑을 속삭이는 꽃처럼.

등산로변에는 애기나리꽃, 금강애기나리꽃이 활짝 피어 인사를 건넨다. 한국특산식물 금강애기나리는 애기나리보다 꽃이 작다. 자그마한 꽃잎을 활짝 뒤로 말려 있으며, 꽃잎에 홍자색 반점이 있어 눈에 띈다. 금강산에서 처음 발견되어 금강애기나리라고 한다. 또는 진부애기나리라 부르기도 한다.

어느덧 웅장한 삼각봉과 왕관릉이 보이기 시작한다. 화려한 붉은병꽃, 하얀병꽃의 어울림 속에서 한라산은 꽃물결로 무르익어가고 있다. 계곡에는 나그네의 마음을 적셔 내리는 맑은 샘물이 졸졸 흐른다. 샘이 흘러나오는 바위틈에 섬바위장대가 피어 반긴다. 하얀 꽃잎이 나풀거림은 마치 흰나비의 팔랑거림 같다. 전 세계에서 오로지 한라산에서만 자생하는 섬바위장대는 제주특산 희귀식물이다. 꽃은 6월에서 7월까지 핀다.

들꽃의 주는 즐거움에 정신을 놓다보면 멈춰버린 시간처럼 느껴진다. 1시까지 용진각 대피소에 도착해야 한다. 1시 이후에는 입산 금지령이 내려 백록담까지 갈 수 없다. 꽃의 초침에 멈춰버린 세계에서 꽃을 감상하다 보니, 용진각 대피소에서는 입산 금지령이 내려졌다. 꽃의 세계에 빠져 버렸다는 것을 늦게야 알았다.

백록담을 보기 위해서 급하게 산길을 오른다.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돌계단을 오르고 초록으로 물든 숲을 지나 구상나무 숲길을 지나면, 맑은 물 젖줄기로 제주인들을 보살피는 백록담이 있다. 큰앵초의 응원을 받으며 백록담을 향해 단숨에 오른다. 거친 호흡을 몰아쉬고 한라산 정상에서 푸르른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은 백록담 안으로 들어와 구름을 만들고 노루가 유유히 거닐고 있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 옛 신선은 없으나 지금 선 자리가 신선이고 가장 아름답다.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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