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것은 인연이 닿아야 만날 수 있는 법입니다. 풀 한 포기조차 인연이 닿아야 만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애타게 보고 싶다 하여도 만날 수 없는 인연이라면 그 곁을 스쳐 지나가도 만날 수 없습니다. 눈 한번 깜박이는 사이에도 수많은 인연이 닿습니다. 어쩌면 너무 쉽게 만날 수 있는 탓에 인연의 소중함을 인식 못 할 때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영주치자를 찾아 헤맸습니다. 영주치자는 남해 일부 섬에만 자생하는 식물로 보기 힘든 만큼 흔치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주치자가 있는 곳을 알게 됐습니다.
마전과 상록 덩굴성인 영주치자와 꼭두서니과 치자나무는 서로 다른 종류의 식물인데도 영주치자를 생각하면 치자꽃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영주치자는 어떤 모양으로 꽃을 피울까 참으로 궁금했습니다. 실제의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영주차지 꽃이 피는 7월이 됐습니다. 태양은 이글거리기 시작했고 숲은 이글거리는 태양이라도 가리듯 무성한 이파리로 가려 놓았습니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삼켜 버릴 듯한 자연의 숨골로 갔습니다. 영주치자 꽃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달려갔으나 영주치자 줄기만이 큰 키나무를 칭칭 감기며 뻗어가고 있을 뿐, 꽃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싱그러운 초록이파리를 뚫어져라 쳐다봐도 영주치자 꽃송이 하나 찾아 볼 수 없는 아쉬움만이 바람에 나부낍니다. 초록 물이 금방이라도 떨이 질 듯한 나무그늘에 앉아 아직 꽃이 피지 않았거니 생각하곤 초록으로 물든 나무만 빤히 쳐다보며 다음을 기약하는 순간, 연노랑 꽃송이가 발밑에서 소담스레 웃고 있었습니다.
아, 그렇게 찾아 헤매던 영주치자 꽃임을 첫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어떤 꽃송이보다 더 소중하게 다가와 새로운 꿈으로 피어나는 낙화... 한때는 아름다움으로 반짝거렸던 꽃, 싱그러운 이파리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아름다움은 낙화로 피어납니다. 슬픔은 금빛으로 물들고 거역할 수 없는 꽃의 생명은 거미줄에 매달린 채 바람에 나부낍니다.
이주전에 영주치자 꽃이 하늘하늘 거리며 웃고 있었는데도 아직 꽃이 피지 않았거니 하고 싱그러운 나무 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하면서 몇 주 후에 다시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아쉬운 발걸음을 뗐던 그날, 영주치자 꽃은 초록이파리 사이로 만발하게 피어났으나 인연이 닿지 못해 만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영주차지는 7월에 흰 꽃이 잎겨드랑이에서 두어 송이씩 피는데 차츰차츰 흰 꽃이 노란 빛깔로 변해 가면서 떨어지나 봅니다. 열매는 장과로 10~11월에 붉게 익는다고하니 열매가 익을 즈음 기약해야겠습니다.
나무꼭대기에 숨어 찾을 수 없었던 영주치자 꽃이 낙화로 새롭게 피어나는 7월의 끝자락에서...
낙화의 꿈
하늘에 닿을 듯한 욕망,
거미줄에 매달려
꿈으로 피어나는
낙화의 꿈
발밑에 핀 꽃송이
짓무르도록 곪아 터져도
행복하게 웃고 싶다
땅위에 뒹굴어도
웃음 꽃밭에서
한 송이 꽃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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