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나무 이야기

화산회토에 박힌 별, 돌매화나무

제주영주 2009. 5. 14. 22:42

6월의 제주 야생화

화산회토에 박힌 별, 돌매화나무


제주휘파람새

노루도

일만 팔천 신들마저

꽃불 속으로 뛰어드는

초여름


세속의 깃털을 훌훌 털어

구름다리 건너

꽃 그림자 밟으며

한라의 신전에 바치는 순결,


화산회토에 박힌 하얀 별빛누리

그리움 안고 피었구나!


꽃이 피는 날에는

꽃불도 숨죽이며

활활 타오르네!


아, 그대들의 눈 속에도

꽃불이 타오르며 숨죽이는 하얀 별빛.


흰 사슴이 뛰놀았던 백록담 주위에는 다양한 수호석들이 만물상처럼 전시되어 있습니다.  설문대할망을 닮은 바위를 비롯해 사랑 바위 등 일만 팔천 신들이 백록담을 지키고 있는 듯 수직으로 우뚝 솟은 검은 바위들이 에워 싸여 신비로움은 더합니다.


그 신비로움이 깃든 암벽에는 돌매화나무가 드물게 자생합니다. 여름의 전령사인 돌매화나무는 하늘과 맞닿을 듯한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새벽이슬을 머금고 청초하게 피어납니다.


하얀 꽃송이들이 송이송이 맺혀 화산회토(火山灰土)에 별처럼 박히는 돌매화나무는 세속을 떠난 수도자처럼 향기 없는 꽃으로 그 누구도 유혹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옹기종기 모여 앉은 오름군을 품어 안고 하늘을 바라보며 흙 한 줌 없는 화산회토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폭풍 같은 세월, 밤마다 불어오는 칼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버팁니다. 고독한 나날 속에 광명 같은 날은 겨우 다섯 손가락도 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날을 위해 고독을 벗삼아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별을 헤이며 살아가는 돌매화나무에 하얀 별처럼 그리움이 송글송글 맺혀 피어납니다.


돌매화나무 꽃망울이 터트릴 즈음이면 산철쭉이 피보다 붉게 타오르며 윗세오름 선작지왓과 진달래밭을 붉게 물들입니다. 마치 돌매화가 피기를 소망하듯, 불꽃은 활활 타오르며 장관을 이룹니다.


돌매화나무는 지구상에서 가장 키 작은 나무로 겨우 2cm~5cm 정도의 높이로 바위에 바짝 붙어서 자라는 상록성입니다. 꽃이 매화를 닮아 돌에 피는 매화라는 의미로 ‘돌매화나무’라 합니다. 이 식물은  일본, 러시아, 북미 등에 분포하나 우리나라에선 제주도 한라산 정상에서만 자생하는 희귀식물로 환경부 지정 멸종 위기 야생 식물 Ⅰ급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키가 작은 목본 식물로서 학술적 가치도 높습니다. 돌매화나무는 희귀한 식물인 만큼 번식이 어려워 개체수가 적습니다. 한라산으로 오르는 걸음걸음마다 순백의 꽃, 돌매화가 산재해 있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한여름에도 한기가 몰아치는 한라산 정상에 자리한 돌매화나무는 거센바람으로부터 이겨내기 위해 바위에 바짝 엎드려 두툼한 잎들이 빽빽하게 모여 뿌리를 감싸 안습니다. 그 빽빽한 청록잎 사이로 자그마한 꽃대를 세우고 순백의 꽃을 피우는 돌매화의 아름다움은 고난 속에서도 흐트러짐이 없이 순결한 꽃으로 피어나기 때문입니다.


돌매화나무의 매력은 꽃이 피는 모습이나 꽃이 지는 모습이 한결같이 아름답습니다.  5장의 꽃잎은 폭풍 속에서도 활짝 열어 이 꽃의 수분매개체인 개미들을 품어 안습니다. 또한,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꽃잎을 통째로 툭 하니 떨어트리며 꽃의 생명을 마감합니다. 백록(白鹿)의 노닐었던 전설처럼 하얀별 하나가 아스라이 스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