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나무 이야기

백록담의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꽃, 시로미

제주영주 2009. 4. 25. 04:36

 

백록담의 봄은 시로미꽃이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하면서 열립니다.

 

한라산 기슭에는 목련을 비롯해 벚나무, 분단나무 등이 흐드러지게 피어 봄바람에 일렁이고 있으나, 한라산 정상에는 잔설이 남아 여전히 찬 기운이 감돌며 긴 겨울의 끝자락에 머물러 있는 듯하나 한라산 정상에도 봄이 왔습니다.

 

백록담을 비롯한 한라산 해발 1500미터 이상 고산지대에서 자생하는 시로미꽃이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하면서 백록담의 봄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립니다.

 
시로미는 4월이되면 싱그러운 푸른 잎겨드랑이 사이로  자줏빛 꽃을 자잘하게 피워냅니다. 흐드러지게 핀 시로미꽃은 마치 가을날 곱게 물든 단풍나무처럼 아름답습니다.

 

상록성인 시로미나무가 단풍이 들지 않을 것 같지만,  가을이 되면  싱그러웠던 잎은 차츰차츰 검붉게  물들어갑니다. 단풍이 든다 하여 잎이 전체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서서히 하나 둘씩 새로운 싱그러운 잎이 돋아나면서 단풍든 잎을 떨궈냅니다.

 
시로미꽃은 눈여겨보지 않으면 꽃이 피었는지조차 알 수 없을 만치 2mm도 채 되지 않은  자그마한 꽃을 피워냅니다.  꽃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붉은 꽃술이 꽃잎 밖으로 길게 나와 하늘하늘 거리며 바람에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가느다란 꽃술 위에는 탐스러운 붉은 꽃밥이 얹어 있지만,  나비와 같은 곤충이 찾아들지는 않습니다. 시로미꽃이 피는 시기인 4월, 한라산 고산 지대에는 온도가 낮기 때문에 곤충들이 찾아들기에는 이른 시기입니다.

 
시로미나무의 생존전략은 꽃술에 있습니다. 잎겨드랑이에 숨은 작은 꽃에는 가느다란 꽃술이 꽃잎 밖으로 길게 나와 수분매개체인 바람을 이용합니다. 이처럼 한라산 정상에서 부는 바람은 때론 매섭기도 하고 때론 부드럽게 식물을 어루만지며 품어 안습니다.

 

4월에 시로미꽃이 피고 나면 7~8월경이면 콩알만 한 크기의 열매가 검게 익습니다. 불로초라 여기는  시로미열매는 지금으로부터 약 2200년전, 진나라의 진시황의 불로장생을 위한 영약을 구해오라는 명을 받고  영주산(한라산의 옛이름)으로 동남동녀 5000명을 이끌고 온 서불이 시로미열매를 가지고 갔다는 전설에 의해 제주에선 시로미열매를 불로초라 생각합니다.

시로미(시로미과 empetrum nigrum var)는 북반구의 아한대와 남아메리카의 고산 지역에 약 5종이 자생하나, 우리나라에서는 한라산과 백두산에 1속 1종이 자라는 희귀식물인 시로미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시로미열매를 채취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한라산 고산지대에는 시로미꽃이 지고 나면 흰그늘용담, 설앵초 등의 풀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면서 산개버찌나무와 귀룽나무가 피어나고 털진달래와 산철쭉이 피어 완연한 봄빛으로 물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