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이야기

영혼을 깨우는 종소리

제주영주 2009. 8. 17. 00:16

 

제주의 야생화 9월,  영혼을 깨우는 종소리


가을바람이 채 불기도 전에 가을을 알리는 은은한 꽃이 제주에 있습니다. 강원도에 금강초롱꽃이 있다면 제주에는 푸른 바다보다 더 짙은 청잣빛으로 꽃을 피우는 섬잔대가 있습니다.


가을은 가장  높은 곳에서 하늘빛보다 더 푸른 빛깔로 청아한 소리를 내며 우주의 만물을 깨우나 봅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을 무렵 한라산 백록담에는 자그마한 꽃대를 세우고 모진 바람 속에서 은은한 청잣빛 종소리로 잔잔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합니다.


새벽녘 샛별처럼 피어나는 꽃, 하늘 우물을 길고 또 길어 파리해진 빛깔로 별을 담는 섬잔대, 청아한 울림으로 꽃을 피우고 싶은 탓일까요. 은은한 소리로 자연의 소리를 알려주고 싶은 까닭일까요.


입추가 시작되면 한라산 백록담에는 가을꽃들이 하나둘씩 꽃봉오리를 터뜨리기 시작합니다. 가을의 전령사 중에는 쑥부쟁이, 물봉선 등이 산자락에 피어 가을이 왔음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서 청아한 소리로 가을을 전하는 꽃, '섬잔대'의 종소리에 가을은 한층 겸허해집니다.


섬잔대의 은은한 종소리는 백록담 주위를 한 바퀴 돌아 아슬아슬한 협곡을 지나 한라산과 마을을 이어주는 오름 능선을 타고 내려와 어느덧 우리네 마음의 문을 두드립니다. 가을은 깊어만 가고 오름마다 잔잔한 종소리로 가을의 기도는 시작됩니다.


거센 바람이 불면 불수록 더욱 청아해지는 섬잔대의 종소리로 다가서는 가을의 문턱에서

하늘 한번 쳐다보세요. 하늘 가득 땡그랑거리며 들려오는 가을의 소리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누구나 가을이 되면 시인이 되고 자연을 노래하는 음악가가 될 수 있지요. 고단한 몸은 헐벗어도 마음은 하늘 우물보다 깨끗할 수 있는 영혼을 지닌 우리네..


그저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 감사할 줄 안다면 어디서든 흔히 잘 자라는 풀 한 포기, 들꽃이 마음 한 모퉁이에서 꽃을 피울 테지요. 이처럼 자연은 우리에게 늘 아름다움을 전하기도 하고 감사하는 법을 살며시 알려줍니다.


섬잔대의 크기는 약 20cm 정도 자라며 종 모양의 하늘색 꽃은 아래쪽으로 향해 피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이 식물은 초롱꽃과 잔대 가족입니다. 잔대 종류로는 당잔대, 잔대, 층층잔대, 둥근잔대, 섬잔대 등이 있습니다. 섬잔대는 한국특산식물로 한라산에 분포하는 아주 특별한 들꽃입니다. 섬잔대는 이름 그대로 섬에서 자생하는 잔대란 의미입니다. 잔대와 섬잔대의 차이는 미미합니다. 구분하여 부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굳이 구분하려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한라산 백록담에서 부는 가을바람이 시나브로 마을 어귀마다 불고 나면 갯내음 풍겨오는 갯바위에도 가을꽃으로 곱게 물들이기 시작합니다. 가을은 청아한 소리로 자연을 노래하는 영혼의 계절, 그 청아한 소리에 우리네의 마음이 한 겹씩 씻겨 내릴 테지요. 하늘빛을 닮은 섬잔대의 종소리처럼 맑아지는 가을날이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