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농부의 아낙을 닮은 둔지오름

제주영주 2010. 5. 15. 23:12

 

 

둔지봉

 

농부의 아낙을 닮은 달이

한동리 산 40번지에 뜬다

 

뱀처럼 휘어진 농로 너머로

등 굽은 초승달이 걸쳐있다

 

척박한 들녘에

허기진 배를 움켜쥔 채

하얀 쌀밥 같은

찔레꽃으로 배를 채우는 둔지봉

 

오름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또는 오름길을 어떻게 선택했느냐에 따라 오름에서 풍겨오는 이미지는 색다르다. 오름 표지석 앞에 차를 세워두고 그저 오름을 오르는 것을 목적에 두지 않는다면, 오름길을 따라 펼쳐지는 오름 풍광을 가슴에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

둔지봉은 북서쪽에서 바라보면 삼각형 모양으로 봉긋 솟아있다. 그러나 남쪽에서 바라보는 둔지오름은 초승달처럼 능선이 부드럽게 펼쳐진다. 이 오름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는데, 송당에서 평대 방향으로 약 2km 지점 왼쪽 농로에 들어서면 농기계 창고 한 채가 있다. 이 길을 따라 약 2.5km쯤 가면 둔지봉 초입에 다다른다.

길은 뱀처럼 휘어지고 그 너머로 농부의 아낙을 닮은 달이 떠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돌담과 어우러지는 농삿길은 어릴 적 걸었던 길처럼 고즈넉한 풍경으로 펼쳐진다. 둔지봉으로 이어지는 농로에는 하얀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그윽한 꽃향기로 가득하다. 종달새의 노랫소리는 정겹게 들려오고, 밭담으로 이어지는 길가에는 등심붓꽃이 소슬바람에 흔들린다. 풀꽃이 손짓하는 곳마다 쉬어가는 오름길은 흙 내음, 꽃향기가 바람에 실려 향긋하다. 둔지봉은 농부의 손길에 의해 변하는 오름이다. 농부가 유채를 심으면 노란 물결 위로 초승달을 그려내고, 보리농사를 지으면 초록 물결 위로 여인네의 눈썹처럼 초승달이 뜬다.

둔지봉은 표고 282.2m, 비고 152m, 둘레 2,567m의 규모로 남쪽으로 넓게 벌어진 말굽형 화구를 갖추고 있다. 이 오름 분화구에는 용암이 분출하면서 화산쇄설물이 퇴적한 이류구가 형성돼 있다. 둔지모양으로 형성된 이류구와 옹기종기 묘들이 어우러진 모습은 마치 제주의 오름 천국을 연출하듯, 이색적인 풍광을 자아낸다.

이 오름의 유래는 둔지처럼 형성된 이류구가 많아 붙여진 듯하다. 둔지는 평지보다 높은 곳을 가리키는 제주어다. 이 오름은 둔지봉 표지석 방향과 분화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서사면 쪽으로 등반로가 개설돼 있다. 등반로에 깔린 고무매트 사이로 등심붓꽃과 뚜껑별꽃이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등심붓꽃은 목초종자에 의해 유입된 귀화식물이다. 붓꽃 종류 중 가장 작은 풀꽃이지만, 분홍빛으로 화사하게 핀다.

뚜껑별꽃은 해안가에서부터 저지대 오름 일대에 분포한다. 이 꽃은 열매가 익으면 가운데 부분이 가로로 갈라지면서 뚜껑처럼 열린다고 하여 뚜껑별꽃이란 꽃 이름을 가졌다. 또는 자색에 가까운 보랏빛으로 꽃을 피우기 때문에 보라별꽃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별모양의 꽃이 봄에 핀다고 하여 별봄맞이꽃이라는 예쁜 별칭도 가지고 있다.

등심붓꽃과 뚜껑별꽃은 날씨의 변화에 민감하다. 날씨가 흐린 날에는 꽃잎을 다물고, 햇볕이 비춰야만 꽃잎을 활짝 연다. 이 외에도 이 오름에는 골무꽃과 노루발풀이 드물게 자생하고 있다. 오름 등성이에는 소나무와 삼나무로 조성돼 숲을 이루고 있으며, 정상에는 동부지역을 살펴보는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이 오름 남동쪽으로는 돗오름과 다랑쉬가 다가서 있다. 동서쪽으로 병풍을 치듯 오름이 이어져 있으며, 북쪽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행원리의 하얀 풍차가 갯내음을 불어 줄 것만 같다.

 

   
  ▲ 배처럼 휘어지는 농로 너머로 보이는 둔지봉.  

 

   
  ▲ 귀화식물인 '등심붓꽃'.  

 

   
  ▲ 둔지봉 분화구에는 용암이 분출하면서 화산쇄설물이 퇴적한 이류구와 무덤이 형성돼 있다.  

 

둔지오름 가는 길 ☞ 제주시->번영로->대천동사거리->송당사거리에서 직진->1112도로 따라 갈림길에서->평대쪽으로 가면 둔지봉 표지석이 나옴. <제주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