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 하늘 아래로 펼쳐지는 가을빛이 발그레하니 참 곱다. 바람결도 깃털처럼 부드러운 음색을 내며 아름다움을 한껏 토해내고 있다. 섬과 풍차가 어우러지며 물결을 일렁이고 있는 그 아름다움 속으로 이끌게 하는 계절이다.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로 향했다. 제주시에서 서쪽으로 43km 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어촌 복합마을이다. 용당리와 고산리가 이웃해 있으며 차귀도가 펼쳐지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이 마을은 용당리에 있는 용못이 있는데 그 못의 한자어 표기에 따라 ‘용수리’라고 불리게 됐다고 한다. 또 하나의 유래는 가뭄에도 샘물이 마루지 않고 좋은 물이 많이 나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특히 용수리 해안도로는 풍차와 바다, 섬이 어우러지며 장관을 이룬다. 풍력발전기가 즐비하게 늘어선 풍광에 이끌려 달리다 보면 차귀도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이 해안도로를 따라 그림처럼 펼쳐지는 차귀도를 향해 달리다 보면 제주올레 12코스 종착지이며 13코스 출발지인 용수포구에 도착한다. 두어 척의 배만이 포구를 지키고 있다. 한적한 용수포구는 한국 최초 신부의 성 김대건 신부의 기착지로 알려졌다. 이 포구 옆에는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기념관과 성당이 있다. 또한, 아름다운 사랑의 전설이 깃든 ‘절부암’이 있다. 이 마을에선 제주도 기념물 9호인 절부암에서 절부고씨를 추모하기 위해 매년 음력 3월 15일이면 절부암제를 봉행하고 있다.
용수 포구 선착장에서 한치를 해풍에 말리고 있는 고재경(64) 용수리 전 이장을 만났다. 고재경 전 이장을 통해 용수마을에 대해들을 수 있었다. 그는 용수리는 바다와 근접해 있어 노을이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소개했다. 고 전 이장은 “예전에는 물질하여 자녀 공부시킬 만큼 해산물도 풍부했는데 바다 자원이 고갈되면서 지금은 이 마을에 40여 명의 해녀가 남아 있다"며 얼마 가지 않아 해녀들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고 걱정했다.
이어 그는 “나이가 든 사람은 많고 젊은 층은 없다”며 “마을이 고령화되고 있다”고 걱정했다. 시끌벅적한 아이들도 찾아보기 어려울 만치 이 마을은 저녁 하늘처럼 고요하다. 용수해안도로에 우뚝 선 풍차만이 굉음 소리를 내며 요란스러울 뿐이다. 용수 해안도로를 제대로 만끽하려면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것이 제맛이다. 뱀처럼 휘어지는 용수 해안도는 바람을 가르며 달릴 때 오감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풍차와 섬, 바다가 어우러지는 모습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펼쳐진다. 용수리 포구 앞에서 자전거를 대여 할 수 있는데 단돈 3,000원이면 된다.
이 마을에는 바다에서 재난을 피하고 풍어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2기의 방사탑을 세워졌다. 바다 서쪽으로 풍수지리상 허하여 남쪽과 북쪽으로 각각 1기를 쌓았다. 2기의 방사탑은 바닷물이 닿은 암반 위에 쌓여 있다. 방사탑을 지나 가을빛이 녹아든 생이기정길로 향했다.
금빛 능선이 파도와 함께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생이기정길은 새들이 절벽에 즐겨 찾는 곳이란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길은 올레꾼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며 가을 노을을 감상하기에는 최적지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지실이섬과 와도 또는 지실이섬과 죽도 사이로 단풍처럼 붉은 노을이 장관을 연출한다.
또한, 이 마을의 자랑거리는 철새도래지로도 유명한 ‘용수저수지’다. 이 저수지는 속칭 ‘병딧물’이라고 한다. 군사가 주둔해서 못 물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저수지 주변에는 자연습지가 많아 철새들의 먹이가 풍부하다고 한다. 황새를 비롯해 저어새, 등이 겨울을 나기 위해 찾아오곤 한다. 용수저수지로 가는 길목에는 소담한 교회가 나그네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이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로 8㎡ 규모의 목조건물이다. ‘순례자의 교회’란 이름이 붙여진 이 교회는 나그네에게 영혼의 쉼터를 제공하기 위해 지어졌다. 교인이 아니어도 누구라도 이곳에선 영혼을 달래 수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선 교회 안은 성인 5명이 앉을 정도로 작은 공간이다.
이 자그마한 교회 정원으로 노을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가을은 인생의 뒤안길을 뒤돌아보게 하는 길목이다. 인생의 여정에도 가을이 깊게 녹아들어 와 풀잎이 서걱거린다. 수많은 인연이 노을처럼 곱게 물들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제주마을탐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린 겨울 바다가 아름다운 ‘함덕리’ (0) | 2013.01.02 |
---|---|
철새들의 낙원, 하도리 (0) | 2012.11.25 |
오름과 동굴 그리고 습지가 어우러져 발길이 머무는 곳 (0) | 2012.09.28 |
선조의 삶을 이어가는 구엄리 (0) | 2012.08.30 |
즐거움과 재미를 더한 마을, 낙천리 (0) | 2012.08.08 |